서양의 남반구 수탈은 계속되고 있다… ‘빼앗긴 대지의 꿈’
입력 2010-03-11 18:22
빼앗긴 대지의 꿈/장 지글러/갈라파고스
‘아프리카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2000만 명 이상이 강제적으로 가족의 품을 벗어나 대서양 너머로 이송됐다. 그곳의 농장, 광산 등지에서 배고픔과 질병, 고문 등으로 고통을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했다.’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많은 서양 제국주의들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무력침략해 식민지를 넓혀갔다.’ 17세기 이후 근대의 암울한 풍경이다. 서양은 노예 사냥과 식민지 정복을 통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등 남반구에서 지울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서양의 이런 과오들은 남반구 국가에는 고스란히 커다란 상처로 각인돼 있다. 세계화가 가져온 기아문제를 고발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필명을 알린 저자 장 지글러가 이번엔 신작 ‘빼앗긴 대지의 꿈’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로 인해 현재까지도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남반구 22억 인구의 아픈 기억과 그로 인해 위기에 봉착한 오늘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선 서양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이면서도 남반구 주민들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꼬집는다. “서양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가 내부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만 이들 국가 헌법의 토대를 이루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각 나라의 국경을 벗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이들은 남반구 주민들에 대해서는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저항하는 것들은 모조리 짓밟아 버리는 정글의 법칙을 적용한다.”
2000년부터 8년 동안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이사회에서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고 현재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제 활동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구와 남반구 국가들과의 관계를 파헤친다.
실로 남반구의 역사는 서양에 의한 침략과 수탈, 학살로 점철된 피와 눈물의 역사다. 서구 제국주의가 뿌려놓은 비극의 씨앗으로 남반구 대부분의 나라들은 오늘날 빈곤과 내전이라는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서구의 노예사냥으로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조국을 떠나 다른 대륙에서 살고 있다. 유럽이 벌인 식민지 정복으로 다양한 종족이 조화롭게 무리를 이루며 살던 아프리카는 산산조각이 났다. 억지로 그어진 국경선은 내전의 불씨가 됐고 이는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과거 식민지 세네갈을 방문해 “식민 지배자들 가운데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문명을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늘어놓았다. 서양은 남반구 주민들의 고통과 상처 입은 기억에 무심하며, 이들의 사과와 보상요구를 묵살한 채 자기 민족 중심주의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서양의 오만과 독선, 기만적인 태도는 남반구 사람들의 서양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서양의 남반구에 대한 침략과 착취는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노예제나 식민지 지배는 세계화 체제라는 괴물로 바뀌어 여전히 남반구를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8위의 석유생산국이지만 다국적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국부 반출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은행마저도 처참한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돌아가야 할 개발지원금을 나이지리아에 퍼부어 석유기업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저자는 “세계화한 서양 자본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을 비롯해 다국적 민간 기업들로 구성된 ‘용병’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무기 삼아 강요하는 체제”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증오, 지나친 이기심은 보다 나은 세계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의 경고는 귀담아 들을만 하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가혹한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던 남반구 국가들이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배타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요즘의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한편으로 그는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의 변화에서 희망을 찾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농부 출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끄는 볼리비아 사회주의 정권은 2006년 1월 출범하자마자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천연자원 사업의 국유화에 나섰고 거기서 발생하는 재원을 빈곤층 구제로 돌렸다. 기득권 층의 저항도 만만치 않지만 변화의 물길을 거스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저자는 서구와 남반구가 동지애를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꿈꾸며 이렇게 강조한다. “보다 살맛나는 세계, 보다 인간이 대접받는 세계, 평등과 정의가 구현되는 세계의 탄생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남반구 지역에서 새롭게 태동하는 주권국가들과 서양의 연대 여부에 달려 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