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펴낸 신현규 중앙대 교수

입력 2010-03-11 17:55


“기생은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갖고 있었지요. 전통기예의 전수자이며 근대 대중문화를 이끈 선구자로서의 역할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신현규(45·사진)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의 전공은 조선 장편 한시 연구이다. 그러던 그가 2002년부터 일제강점기 기생 연구에 쏙 빠져들었다. 일본의 호세이(法政)대학 가와무라 미나토 교수의 ‘말하는 꽃 기생’의 한국어 출판이 자극제였다. 기생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로는 국내 처음 출간된 이 책에서 가와무라 교수는 창기(娼妓)라는 측면을 부각시켰는데 이 같은 평가에 대한 반감이 신 교수를 기생 연구로 끌어들였다. 신 교수는 “우리의 기생을 너무 왜곡되게 그려낸 그 책을 읽고 어이가 없었고 분노까지 치밀었다”며 “기생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일제 시대에 발행된 잡지와 신문 등을 뒤적이고, 고문서 수집가 등을 만나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숨어지내다시피 하던 팔십이 넘은 옛 기생들을 찾아내 어렵게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꽃을 잡고-일제강점기 기생 인물·생활사’를 펴냈다. 국내 학자가 기생에 대해 본격 연구한 첫 결과물이었다. 탄력을 받은 그는 2006년 ‘평양기생 왕수복-10대 가수 여왕되다’, 2007년에는 ‘기생이야기-일제시대의 대중스타’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어문학사)는 기생을 주제로 한 그의 다섯 번째 책이다. 1922년 야구 시범경기를 위해 방한한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에게 검무 승무 사고무 등 우리의 춤사위를 선보이고 음악을 들려주는 등 조선의 문화홍보 대사 역할을 한 명월관 기생 등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전통춤과 전통 악기의 계승자, 공연예술가로서의 역할도 조명한다. 인기가수, 영화배우, 신문과 잡지의 광고모델 등으로 활동하면서 근대 대중문화계를 주도한 선구자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아울러 미용과 패션, 화장 등에서 시대를 앞서나가며 유행을 선도한, 오늘날의 연예인의 시초라는 점도 그리고 있다.

신 교수는 “기생들은 전통 예악문화의 계승자이면서 연예인들이었다”면서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전통문화의 상당부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긍정적인 역할들도 적지 않았는데 어두운 면만 지나치게 부각해 기생들을 우리 스스로 천시했었다”며 “그들이 우리 근대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는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명기(名妓 )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평전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