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망 좁히자 빌라 옥상서 후다닥 “저기다! 덮쳐라”

입력 2010-03-11 00:49


도피 행적과 긴박했던 검거 과정

부산 여중생 이모(13)양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33)는 부산 삼락동 H빌라 3층 옥상에서 수색 중이던 경찰에 발견되자 옥상 사이를 뛰어넘고 경찰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등 격렬히 저항했다.

긴박했던 검거 과정

김길태가 검거된 곳은 사건 현장인 덕포동 재개발구역과 불과 5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수색을 하던 경찰이 빌라 옥상 문을 여는 순간 범인과 유사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을 발견해 “너 길태지? 길태다!”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김길태는 민첩하게 옥상을 건너뛴 뒤 다시 빌라와 빌라 사이 50㎝의 좁은 틈을 등과 발을 이용해 내려가 도주하기 했다. 다른 경찰이 앞을 가로막자 얼굴을 후려쳐 넘어뜨렸다. 김길태는 그러나 시끄러운 소리에 몰려나온 주민 김모(55)씨의 발에 걸려 기우뚱하다 맞은편에서 오던 수색팀 2명에게 제압됐다.

김길태가 발견된 빌라 옥상은 사건 발생 후 두세 차례 수색이 이뤄졌던 곳이다. 경찰은 먹고 잠잔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그가 다른 곳에 은둔해 있다 이날 새벽 이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연인원 3만여명과 헬기, 소방서 수색견, 굴삭기 등을 동원한 대대적인 수색·검거 작전을 편 끝에 사건 발생 14일 만에 김길태를 검거했다. 초동 수사에서 허점을 노출했던 경찰이지만 “여러 정황상 김길태가 사상구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 사상구 일대에 ‘저인망식’ 수색 작전을 펴 검거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길태가 이양 납치 현장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곳에서 검거됨에 따라 그동안 경찰 수색이 겉돌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김길태 조사

사상경찰서 형사과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받은 김길태는 극도의 심리적 불안정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경찰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날 밤 9시쯤 일단 조사를 중단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프로파일러도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야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라며 “겉으론 담담해보이지만 분명 정신적으론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내가 김길태가 맞고 전단지 사진은 경찰에 붙잡혔을 때 찍힌 것”이라고 인정했으나 여중생 이양을 아느냐는 조사관의 질문에는 “모른다”거나 “이양의 집에도 가본 적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길태의 그간 행적

김길태는 경찰 조사에서 “덕포동 일대 빈집과 폐가, 건물옥상 등지에서 숨어 지내왔다”면서 “도주 기간 라면을 먹고 술을 마셨으며 담배도 많이 피웠다”고 진술했다.

김길태의 범행동기나 도피 과정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경찰의 수사 허점, 부실한 성범죄자 관리체계 등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달 24일 오후 10시50분쯤 이양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다음날부터 수사를 시작해 이양의 집과 인근 빈집 등에서 채취한 지문을 통해 26일 김길태를 용의자로 확정했다. 김길태는 25일 오후 자신의 집에 들러 아버지 휴대전화로 사상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나는 범인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는 지난 1월 13일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범의 용의선상에 놓여 경찰이 24일 동종 전과자인 그의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경찰의 공개수사 전환 후인 28일 오후에도 김길태는 부산 주례동 친구의 호프집에 들러 맥주를 한 병 마신 뒤 공중전화로 “나는 이양 납치범이 아니다”고 경찰에 강변한 뒤 행방을 감췄다.

경찰은 3월 2일 현상금 500만원에 김길태를 전국에 공개 수배한 뒤 다음날 새벽 5시쯤 이양 집 인근 폐가에서 그를 발견했으나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양은 6일 밤 인근 주택 빈 물탱크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8일 이양의 몸에서 김길태의 유전인자와 같은 DNA가 확인됨에 따라 그를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변경한 뒤 2000만원 현상금과 함께 체포에 나섰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