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트리즈 바람’ 분다] 1995년 국내 첫 선… 에어컨 소음·냉장고 홈바 기술 대표적

입력 2010-03-10 18:11

산업화가 본격화됐던 1980년대 혁신은 곧 ‘품질’이었다. 생산 환경이나 작업자에 따라 달라지는 생산 조건을 안정화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당시 유행하던 컨설팅 이론은 전사적설비보전(TPM)과 전사적품질경영(TQM)이었다.

90년대 들어 기업들은 ‘6시그마’를 적극 도입하며 생산 최적화에 나섰다.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이를 유지·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6시그마 이후 창조경영을 주도하는 방법론이 바로 ‘트리즈’다.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많지만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하는 이론은 없었다. 트리즈는 구체적인 혁신 방법을 제시해 기업 경영은 물론 정치, 사회적으로 활용 범위가 넓다.

국내에 트리즈가 처음 도입된 건 1995년이다. 국내에 다구치(일본의 품질혁신기법) 기법을 소개하고 있던 한국ASI 장기일 박사가 미국ASI의 트리즈 프로그램을 LG전자 생산기술원에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LG는 트리즈 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트리즈 전문가 지노비로이젠을 초청해 사내교육을 실시했다. LG전자 생산기술원은 트리즈 프로젝트팀을 구성했고 ‘에어컨 소음절감 사업’에 트리즈를 적용해 첫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삼성은 1997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트리즈 보고서를 작성하고 활용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2006년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전자 관련 6개 계열사와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트리즈협회’를 출범시켰다.

트리즈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가 양문형 냉장고의 홈바다. 삼성전자는 90년대 후반 양문형 냉장고 출시를 앞두고 냉장고와 홈바를 이어주는 연결 장치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가격이 비싼데다 경쟁사의 특허를 침해할 소지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트리즈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몇 달 후 ‘연결장치를 아예 없애라’는 해법이 나왔다. 발상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대신 냉장고 속으로 홈바 문을 길게 늘여 문을 열면 길게 늘어난 부위가 냉장고 안 선반에 닿도록 했다.

삼성, LG 두 기업을 중심으로 활용되던 트리즈는 2000년대 들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대학들의 관심도 높았다. 포항공대, 카이스트, 서울대, 한국산업기술대 등에서 관심 있는 교수들의 주도로 트리즈 세미나가 개최됐다. 트리즈 이론의 창시자 겐리히 알츠슐러 박사의 서적이 국내에 번역 출판되면서 일반인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트리즈를 활용해 난제를 해결한 경우도 많다. 초고층 건물의 저층·고층용 엘리베이터 분리 운영,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이나 위험구간 도로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규칙적인 홈, 광고가 없는 초기화면을 운영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인터넷 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