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들러리 세웠나… 거래소·예탁원 수수료 내렸지만 투자자 혜택은 전무

입력 2010-03-10 20:30


증권사가 증권유관기관에 내는 수수료는 큰 폭으로 인하됐지만 금융위원회가 투자자들의 위탁수수료 인하에는 소극적인 행보로 일관해 금융위의 정책 입안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 ‘눈엣가시’ 같은 이들 기관의 과다 수익을 줄이기 위한 명분으로 투자자들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9일 ‘증권유관기관 수수료체계 개편 및 수수료 인하’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4일부터 한국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주식·채권 등을 거래할 때 내는 수수료율을 36%, 한국예탁결제원은 증권사 수수료율을 40% 내렸다.

당시 금융위는 이에 따른 수수료 절감액이 매년 거래소 550억원, 예탁원 166억원 등 71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금융위는 당시 “금융회사의 비용이 절감되면 (투자자가 증권 등 거래 시 내야 하는) 위탁수수료 인하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월과 2월, 증권사가 예탁결제원에 낸 수수료는 수수료 인하 조치 전보다 각각 29.2%(23억원), 26.5%(17억원) 줄었다. 그러나 정작 수수료 인하는 투자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고 있다. 이날까지 증권 위탁수수료를 내린 증권사는 한 곳도 없다. 수수료 체계 개편에 따라 투자자 수수료 부담이 최대 15%까지 줄어들 것이라던 금융위의 예측이 무색해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는 거래소와 예탁원의 수수료 수입이 예상대로 감소한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위탁수수료가 추가 인하될 수 있을지조차 의심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 증권사 위탁수수료가 추가 인하될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애초 정책 목적이 투자자 비용 절감이 아니라 ‘거래소·예탁원 군기잡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동안 거래소와 예탁원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높은 수수료를 받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거래소의 총 수입 가운데 금융회사에게서 받은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연 평균 66.1%에 이른다. 이들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기반으로 방만 경영을 했다. 이번 수수료 개편의 목적은 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는 위탁수수료 인하를 검토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A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와 예탁원에 내는 수수료의 절감 규모가 증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다. 투자자에게서 대신 받아서 내는 돈도 아니기 때문에 증권사 위탁수수료를 반드시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 눈치도 있고 해서 ‘위탁수수료 인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라고 토로했다.

개인투자자 송모(35)씨는 “거래소와 예탁원 방만 경영을 고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그렇게 분명히 얘기를 해야지 왜 투자자 혜택을 거론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마음에 안 드는 기관들을 손보기 위해 투자자를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