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교양’의 관점에서 북한 보기
입력 2010-03-10 18:16
“북한은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프로다. 그러나 결점은 있다. 교양이 없다”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니 ‘코인로커 베이비스’ 같은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높은 일본 작가다. 재즈와 쿠바 음악 애호가, TV 토크쇼 진행자,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 걸친 전방위적 활동으로도 유명한 그가 작품 계보에 비춰 의외다 싶은 책을 낸 적이 있다. ‘반도에서 나가라’(2005). 북한군 특수전부대의 일본 침공을 그린 소설이다.
무라카미는 후기에서 집필 동기를 ‘타인과의 교섭,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안보 무임승차 탓에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일본 정부와 오랜 평화에 찌들어 순한 양처럼 된 일본인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어찌 됐건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북한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북조선 사람들이 센 건 당연하다. 외교로 말하자면 그들은 구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고, 미국과도 핵을 가지고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또 국민의 7할이 굶주리는 나라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정보를 조작하고 반항하는 인간을 죽이고 외국에서 돈을 뜯어내 어떻게든 꾸려나왔다. 구역질이 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프로 중의 프로다. 하지만 그들은 조만간 반드시 결점을 드러낼 거다. 교양이 없으니까. 폴 포트나 나치나 마지막엔 교양이 없어서 진 거니까.’
바로 이 대목이, 북한의 몰(沒)교양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요즘 연전에 읽은 이 소설을 떠올려 다시 뒤적이게 했다. 어떤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 ‘국가적 교양의 결여’야말로 한 국가가 지닌 최대의 약점, 혹은 실패의 원인일 수 있고, 북한이야말로 교양과는 담 쌓은 나라임이 분명하고 보면 적어도 단순한 소설가의 허언(虛言)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무수히 많겠으나 일단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문화이상(文化理想)에 부응한 정신적 능력의 전면적 계발로서의 세련됨’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독일의 인문학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설명이 알기 쉽다. 슈바니츠에 따르면 교양은 ‘다른 종류의 신념, 세계관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제3의 관점으로 상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교양을 갖춤으로써 ‘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자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괴상하고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존재로 비칠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교양’, 인성기 외 역). 그런가 하면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아주 단순하게 교양이 없음을 ‘몰상식’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슈바니츠와 서 교수식 풀이에 따르면 북한의 행태가 얼마나 교양 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입북한 청년에게 끔찍한 구타와 입에 담지 못할 성고문을 가해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 하면서 그가 ‘북한의 실상을 알고 뉘우쳤으니 관대하게 용서한다’는 성명을 낸 ‘로버트 박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 수령 유일지배 체제와 그로부터 비롯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대한 배타적 숭배와 핵무기에 대한 집착, 그리고 무엇보다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3대 권력세습은 몰교양의 극치다.
다만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3대 권력 세습의 경우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3대 권력세습으로 가는 징후는 넘친다. 올해 들어서만도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개명하도록 했다든가,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이 벌인 포사격 훈련이 김정은의 지휘로 이뤄졌다든가, 김정은을 칭송하는 노래를 행사 지정곡으로 선정했다든가 하는 소식이 꼬리를 문다.
혀를 찰 노릇이지만 무라카미의 지적처럼 몰교양이야말로 북한의 최대 약점이라고 한다면 걱정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바로 거기서 파탄이 시작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에 대해 안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