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동수] 스토킹
입력 2010-03-10 18:13
한 대학 선배가 자신의 딸이 스토킹에 시달린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명문대를 나온 데다 미모도 갖췄던 그의 딸은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악몽이 시작됐다. 딸의 직장 상사가 어느 날 스토커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선배의 딸을 쫓아다녔다.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오고 문자를 날려댔다.
딸은 단호하게 “당신을 만날 생각이 없다. 나를 그만 괴롭히라”고 했지만 스토커는 코웃음치며 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선배는 딸이 회사를 옮기도록 했다. 하지만 스토커는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에 나타나 딸을 기다렸다. 부모들이 호통을 쳐도 소용없었다.
온 가족은 공포심까지 느꼈다. 아버지는 매일 딸의 출퇴근에 동행해야 했고 딸은 휴일에도 집밖으로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았다. 더 이상 못 견딘 선배는 아는 경관에게 도움을 청했고 스토커는 경찰의 강한 개입이 있고 난 후에야 시야에서 사라졌다. 선배는 “말로만 듣던 스토커가 이렇게 무서운 존재인 줄 몰랐다”며 치를 떨었다.
이처럼 스토킹을 당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관심 있는 상대를 병적으로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스토커들은 일반적으로 연예인들에게 많이 따라붙는다. 외국에선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 미국 여배우 레베카 셰퍼, 이탈리아 패션디자이너 지안니 베르사체 등이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국내 연예인 중엔 27%가 스토킹 피해를 당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스토킹은 대학가에서도 급증하는 모양새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지난해 7∼11월 16개 단과대 학부·대학원생 945명의 스토킹 피해 여부를 조사해 봤더니 15.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학생의 경우 22.6%나 됐다. 남학생도 9.7%에 달한 점이 눈길을 끈다. 사회의 성 인식 변화 등으로 여성 스토커들도 만만찮게 늘어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아직 스토킹에 관대한 편이다. 많은 나라가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어 엄히 다루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범죄 정도로 만 처벌한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의 인식이다. 스토커들은 자신의 행위를 사랑의 표현이나 구애로 여기고 스토킹으로 자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해자의 60%가 심한 스트레스로 수면장애, 극도의 긴장과 불안, 망상증 등을 겪는 현실이고 보면 스토킹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범죄일 뿐이다. 철저히 예방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박동수 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