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8) 연강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 60년대 소유·경영 분리… “다시 태어나도 난 장사꾼”

입력 2010-03-10 21:16


“폐허로 고철이나 다름없는 공장을 인수하다니요? 그 돈이면 차라리 부산에 새로 짓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정부는 일본이 철수하면서 정부가 관리하던 업체들을 민간에 넘기기 위해 공고를 냈다. 동양맥주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연강(蓮崗) 박두병 두산 회장은 동양맥주 인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곧 전쟁이 끝나고 맥주 호황기가 올 것’이라는 선견지명에 따른 것이었다.

9개월간의 영등포 공장 복구 공사를 거쳐 53년 8월 첫 맥주가 생산됐다. 하지만 광복 전이나 광복 후나 국내 맥주 시장은 조선맥주가 시장점유율 70%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상표를 ‘OB’로 바꾸고 영업에서는 총판(어떤 상품을 독점적으로 도맡아 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품질 향상을 위해 독일인 양조 기술자도 초빙했다.

54년 동양맥주는 인기인을 모델로 한 호화판 캘린더를 제작·배포하면서 조선맥주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몇 년간 양대 맥주 업체는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 57년 동양맥주는 품질 우수성을 부각시킨 TV 광고를 내보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 영양음료이며 건강음료입니다. 여성도 마실 수 있는 음료입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동양맥주 점유율은 그해 9월부터 크라운을 앞서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57대 43으로 국내 제1의 맥주 회사로 우뚝 섰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두산은 중공업그룹으로 변모했다.

매헌(梅軒)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 회장은 1932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 취직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남의 밑에 가서 눈칫밥도 먹어봐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게 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박승직 창업주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1896년 서울 배오개네거리(현 종로4가)에서 면직물을 취급하는 ‘박승직상점’을 창업, 100년 역사를 넘는 두산그룹의 기반을 다진 조선시대 거상이었다. 두산그룹은 1995년 10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선정됐다.

박두병 회장은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 전신)에서 보기 드문 인텔리 선각자. 그룹을 본격적으로 이끈 1960대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특히 일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서 5년을 근무한 뒤 1936년 상무로 박승직상점의 경영에 참여했다. 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출근부와 보너스 제도를 도입하며 박승직상점의 변신을 시도했다.

광복 후 박 회장은 운수업을 시작하면서 두산상회로 상호를 바꿨다. 박승직 창업주가 새 사업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네 이름의 첫 자인 ‘두(斗)’자에 ‘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며 지어준 상호였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 회장은 1960년대 들어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한양식품, 윤한공업사 등을 설립하고 합동통신사와 한국병유리 등을 인수하며 기업 규모를 확대했다. 67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당선됐다. 상의 회장으로 재임한 6년 동안 박 회장은 경제인연합회(현 전경련)와 무역협회 등 3단체 간의 알력을 해결해나갔고 70년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 회장을 맡기도 했다.

72년 11월 폐암 수술을 받고도 예전과 다름없이 집무를 보자 주변 사람들은 건강을 생각하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병이 무엇이고 나의 앞이 어찌될 것인지는 누구라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끝까지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금의 나에겐 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했다.

73년 7월 대한상의는 폐암으로 투병 중인 그를 8대 회장으로 재선출했다.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기업과 우리나라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취임사를 한 지 불과 한 달이 못 돼 그는 타계했다.

박 회장은 생전 69년 KBS 라디오 ‘인생의 증언’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을까. 정치가, 학자, 군인도 있지만 역시 내게는 장사꾼 밖에는 어울리는 게 없을 것 같아요.” 그가 일군 두산그룹은 창립 114주년을 맞은 현재 자산 33조5000억원에 매출 21조4100억원, 29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국 최고(最古) 맏형 기업으로서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박 회장 타계 후 한때 전문경영인인 정수창 회장이 총수를 맡기도 했으나 81년부터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오 전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 이어 4남인 박용현 회장이 경영을 맡아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박두병 회장 탄생 100주년이다. 그룹은 올해 그의 탄생을 기리는 기념식을 조촐하게 열 예정이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