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새벽이 푸르다… 신비로운 일출·일몰 풍광 ‘삼척 속섬’

입력 2010-03-10 17:46


그 섬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때는 2007년. 세계적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가 이 땅의 사진작가들도 몰랐던 그 섬의 사진을 세상에 공개한 후였다. 그가 작품사진을 촬영할 때에도 푸르스름한 새벽의 미명이 그 섬을 감싸고 있었다. 신비로운 느낌의 사진에 깜짝 놀란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이 없어 쓸쓸하던 호산리 바닷가로 달려왔다.

“오랜 옛날부터 그 섬은 그곳에 있었지요. 어릴 때 꼴을 먹이기 위해 소를 끌고 그 섬으로 들어갔어요. 소가 풀을 뜯는 동안 미역도 감고 물고기도 잡으면서 기나긴 여름날을 보냈지요. 겨울에 얼음을 지치다 손이 시리면 그 섬에서 불을 쬐기도 했고요.”

그 섬과 가장 가까운 외딴집에서 사는 농사꾼 김종오(53)씨의 어린시절 빛바랜 추억이다. 사실 그 섬은 섬이 아니라 1000여 평 남짓한 모래톱이다. 덕풍계곡과 동활계곡이 만나 가곡천으로 이름을 바꾼 후 동해로 흘러들기 직전. 유속이 느려지면서 고운 진흙 등이 퇴적해 섬을 만든 것이다. 해당화가 아름다운 그 섬에서 호산리와 월천리 사람들은 수박 등 농작물을 재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섬은 평범한 모래톱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30여 년 전 상류에서 떠내려 온 소나무와 이태리포플러 씨앗이 이 비옥한 땅에 착근했다. 300여 그루의 소나무는 섬 중앙에서, 수십 그루의 이태리포플러는 섬 가장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가 그 섬을 휩쓸고 지나갔다. 폭 100m에 길이가 200m쯤 되던 모래톱은 순식간에 절반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태리포플러는 바다로 떠내려가고 소나무만 살아남았다. 그로부터 4년 후에 그 섬이 마이클 케나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왔다.

호사다마라던가. 그 섬이 뜨던 그 해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그 섬을 강타했다.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가 호산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원덕읍 일대에 LNG(액화천연가스) 저장기지를 건설하기로 했다는 보도였다. 계획대로라면 600∼700m에 이르는 가곡천의 강폭이 줄어들고 유속이 빨라져 소나무 숲이 멋스런 그 섬이 유실될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당시 월천1리 이장이었던 김종오씨가 그 섬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그 섬을 촬영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작가들에게 그 사실을 전파했다. 사진작가들이 이 안타까운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고 더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 섬을 찾아 곧 사라질지 모를 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 그 섬의 풍경은 기대만큼 화려하지도 신비롭지도 않다. 오히려 낮에 그 섬을 대하면 너무 평범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몰부터 일출까지 시시각각 연출하는 그 섬의 화려한 변신은 가슴을 뛰게 한다. 특히 군더더기 하나 없는 드넓은 하늘과 수면을 배경으로 계절과 시간이 창조하는 그 섬의 풍경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라하게 만든다.

별빛이 흐르는 섬, 달빛이 고즈넉한 섬, 눈에 내려 흰 눈썹처럼 보이는 섬, 불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 섬 등 온갖 숨겨진 매력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삼척시와 한국가스공사는 그 섬이 훼손되지 않도록 가곡천 뒤로 물러나 LNG 저장기지를 건설키로 했다. 죽을 뻔했던 그 섬이 사진작가들에 의해 되살아난 셈이다.

드디어 짙은 어둠이 그 섬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섬에서 날아오른 오리 떼가 소나무 숲의 반영이 선명한 가곡천에서 유영을 한다. 잔물결이 동심원을 그리자 미인의 눈썹을 닮은 소나무 숲이 거울 같은 수면에서 파르르 떤다. 마이클 케나는 이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그 섬을 솔섬(Finetree Island)이라고 기록했다.

가곡천은 본래 흐르는 강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수량이 줄어들면서 바다와 접한 하구가 호산해수욕장의 모래둑에 가로막혀 호수로 변했다. 그러나 큰비로 수위가 높아지면 모래둑이 허물어져 강과 바다는 소통을 하고 거센 파도는 다시 둑을 잇는다. 이때 비중이 높은 바닷물은 강바닥에, 비중이 낮은 강물은 바닷물 위에 위치한다. 바다고기가 아래에 살고 민물고기가 위에 사는 이유다.

오리 등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그 섬이 지난 겨울에 한차례 매스컴을 탔다. 백조로 불리는 큰고니 10여 마리가 날아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선율처럼 감미롭고 우아한 유영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파도가 거친 날에는 수천마리의 갈매기가 날아들어 그 섬을 하얗게 수놓아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쪽염색 천에 미인의 눈썹을 그려 넣은 듯 신비로운 그 섬의 새벽 풍경. 니콜 키드먼의 푸른 눈동자보다 더 황홀한 그 섬의 진짜 이름은 ‘솔섬’이 아니라 ‘속섬’이다. 늘 물속에 있는 섬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