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교보문고 리모델링
입력 2010-03-09 20:07
지난 1991년 교보문고가 개보수를 위해 문을 닫을 때 명망 있는 출판인 한 분이 분노를 토로했다. “그럴 줄 알았다. 교보가 문을 닫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일개 서점이 모회사(대한교육보험)의 업종전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당시 교보에 옷가게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교보는 약속을 지켰다. 이듬해 5월 31일 1년간의 공사 끝에 다시 문을 열자 11만명이 몰려 새 매장을 구경했다. 평균 방문객의 3배를 넘었으니 인산인해라 부를 만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그 출판인은 손에 장을 지지는 대신 손가락을 깨물어 스스로 고통을 가한 뒤 “신용호 회장을 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점으로 기업 이미지 개선이라는 효과를 거두었으니 부가가치 높은 업종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도 설립자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인적 으로는 천장에 거울과 막대를 덕지덕지 달아 수선스러웠고, ‘핫 트랙스’라는 문구음반가게가 새로 들어서서 생소했던 기억이 있다.
1981년 6월 1일 처음 문을 연 교보문고는 30년 만에 장안의 명소이자 한국의 꿈을 길어올리는 오아시스로 자리 잡았다. 수도 심장부에 1100㎡짜리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50만종 100만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광화문점은 하루 3만명, 연평균 1500만명이 찾는다. 외국인들의 견학 코스로도 인기를 얻어 앨빈 토플러, 빌 클린턴 등이 다녀갔다. IMF 구제금융 시대에 한국을 찾은 금융인들은 교보에서 책 읽는 젊은이들을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걱정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을 읽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진풍경이다.
대한민국 지식공간의 간판격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내달부터 5개월간 문을 닫는다고 한다. 10년 만에 다시 개축 공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리노베이션의 콘셉트는 ‘꿈꾸는 사람들의 광장’(드림 스퀘어)으로 잡았다. 청사진을 보면 빌딩 뒤편 옥외 주차장을 공원으로 만들고 지상에서 바로 서점으로 진입하는 등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서가의 규모다. 1차 개보수 때 그랬던 것처럼 이용자의 편의성을 제고한다는 이름 하에 전시공간을 줄이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용품점을 늘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인근의 한 대형 서점은 최근 책이 있던 자리에 전자제품 코너를 입점시키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달랐으면 한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단순한 책방을 넘어 한국 문화의 품위와 격조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