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성폭력 가중처벌 법안 등 30여건 낮잠… ‘소 잃고도 외양간 방치’
입력 2010-03-09 21:18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을 계기로 여야 지도부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아동 성폭력 예방 관련 법안 처리를 미룬 정치권에 대한 여론의 눈총이 따갑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현재 음주 후 성폭행을 가중 처벌하는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등 30여건이 쌓여 있다.
◇여야 직무유기=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9일 “부산 여중생 성폭력 살해사건은 다시 한번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고 있다”며 “3월 임시국회에서 아동성폭력 관련 법안을 신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도 “왜 국회가 성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낮잠 재우고 있냐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고 자성했다.
그러나 법안 처리 지연에 대해선 서로를 탓했다. 안 원내대표는 “정치공세와 정쟁에 파묻혀 아동성폭력 관련 법안이 신속히 처리되지 못한 점에 대해 야당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세종시에서 빠져나와 민생국회에 하루 속히 응하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런 정치권의 호들갑에 ‘뒷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9월 ‘조두순 사건’ 직후 한나라당은 성폭력 범죄에 대해 최고 50년형을 선고하는 등의 후속 대책을 논의했지만 관련 법안을 아직까지 처리하지 않고 있다. 야당이 제출한 청소년보호법과 성폭력처벌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가 성범죄 예방 관련 예산을 삭감했는데도 여야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법사위는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내용이 사회적 파장이 크다며 4월로 논의를 미루기까지 했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셈이다.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한 관련 법안은 성범죄자 정보를 수집하는 DNA정보이용법이 유일하다.
◇표류하는 주요 법안=조두순에 대해 법원이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라며 낮은 형량을 적용하자, 민주당 최영희 의원 등은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 음주 후 성폭행을 가중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일명 조두순법)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13세 미만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것도 포함됐다. 아동·청소년 관련 교육기관 취업제한을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까지 확대했다. 아동성범죄 피해자 조사 때 정신과 의사 등이 참여해 피해자 진술을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도 계류 중이다.
한나라당 성범죄대책특위는 신상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전자발찌 착용기간을 30년까지 확대하는 등 성범죄자를 엄벌하는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제출돼 있다. 법안을 제출한 박민식 의원은 “미국이나 유럽 등 인권선진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 중”이라며 “본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권침해 논란은 상당 부분 불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