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5명·문인 5명, 그림을 글로 글을 그림으로… ‘그림에도 불구하고’ 전시 4월1일까지

입력 2010-03-09 17:58


주사기에 물감을 담아 톡톡 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윤종석이 말했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세요. 전 안하셨으면 좋겠는데 계속 하세요. ‘그거 안하면 얘. 병난다’ 그러세요.”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낸 시인 이원이 응수했다. “똑같은 거죠. 종석씨가 그림을 그리는 거나 어머니가 식당을 하시는 건 돈 때문이 아니잖아요. 존재의 이유가 그건데.”



두 사람이 각자의 작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글과 그림으로 묘사한 결과물을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페이스에서 4월 1일까지 선보인다. ‘그림에도 불구하고’라는 타이틀로 문학과 미술의 만남을 표방한 전시는 젊은 화가와 문인 각 5명이 서로의 작품을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식으로 꾸며졌다.

문인들은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옮겼고 화가들은 기존에 작업했던 작품 외에 문인들의 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한 점씩을 따로 작업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자화상을 화면 가득 그리는 변웅필은 도발적인 감성을 선보여온 시인 김민정과 짝을 이뤘다. 변웅필은 시인의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읽고 떠오른 느낌을 살려 분홍색을 배경으로 트럼프 카드 중 하트 6과 9를 든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향불로 화면에 구멍을 내는 방법으로 인물을 그리는 이길우는 ‘풀밭 위의 돼지’를 쓴 소설가 김태용과 호흡을 맞췄다. “김연아 스케이트 타는 거 보면요, 너무 예뻐요. 인간의 몸에서, 행위에서 자연이 느껴져요. 제 무희자연(舞嬉自然)은 그렇게 시작됐거든요.”(이길우) “전 고시원에서 작업을 해요. 창문도 없는 제일 좁고 싼 방에서.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하죠. 도시의 밤거리가 저한테는 자연이거든요.”(김태용)

사진 속 도시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조합해 형상화하는 정재호는 ‘조대리의 트렁크’의 소설가 백가흠과, 어린 아이의 모습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상선은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의 시인 신용목과 각각 파트너가 됐다. 참여 문인들의 작품을 읽은 관객이라면 어떻게 그림으로 형상화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문인들이 그림을 보고 쓴 글과 화가들이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 서로의 대화 내용을 묶은 책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02-3479-011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