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선언, 한국독립 조항 포함 홉킨스(당시 미 대통령 보좌관) 작품이었다”
입력 2010-03-09 17:40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1890∼1946·사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장제스(蔣介石) 중국 총통이 큰 역할을 했다는 기존 통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학계에 논란이 예상된다.
언론인 출신인 정일화(69) 한미안보연구회 이사는 최근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 독립의 문-카이로선언’(도서출판 선한약속)에서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 조항이 들어가게 된 과정과 배경 등을 집중 조명했다.
카이로선언은 1943년 11월 27일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질 영국 총리, 장제스 중국 총통이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방안을 협의해 채택한 선언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 한국을 자유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선언은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을 결의한 첫 선언으로 이후 한반도 정책의 밑그림이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 이사는 비밀해제된 미 국무성 비밀문서 등을 근거로 “카이로선언서 초안은 일반적인 국제회의의 관례인 초안공동위원회의 작품이 아니고 회담 개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해리 홉킨스 루스벨트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홀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홉킨스는 뉴딜 정책의 실질적인 설계자로 미 상무장관을 지냈으며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대통령 특사로 영국과 소련에 파견됐던 루스벨트의 최측근 인물이다.
저서에 따르면 홉킨스는 회담 3일째인 11월 24일 오후 루스벨트 숙소의 조용한 일광욕실에서 백악관 문서기록관을 불러 카이로선언 초안을 구술했다. 초안은 한국 독립과 관련, “일본 패망이 있은 후 한국을 가능한 가장 빠른 순간에(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에 자유 독립시킬 것을 결의했다”라고 적고 있다. 초안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수정, 영국 및 중국과의 조율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바뀌었지만 한국 독립 보장이란 기본 구상은 유지됐다.
정 이사는 “홉킨스는 침략주의 철학에 의해 억눌린 식민지 국가를 자유케 해야 한다는 루스벨트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갖고 선언서를 초안했다”고 강조한 반면 한국 독립 조항에 대한 ‘장제스 역할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접근했다.
중국은 한국의 임시정부를 일본 패망 때까지도 승인하지 않는 등 한국의 독립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카이로회담에서 루스벨트가 처칠에게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만주와 한국의 재점령을 포함한 광범한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언급한 대목을 지적하며 “장제스가 한국의 독립 조항 포함을 루스벨트에게 요청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