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페임’ 오디션 현장 가보니… 실력만이 든든한 ‘빽’ 오늘은 내가 주인공
입력 2010-03-09 21:49
뮤지컬은 낙하산이 없다. 춤, 노래, 연기까지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무대에 설 기회는 없다. 그래서 오디션은 아주 중요하다. 유명하지 않아도 실력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페임’ 오디션이 열린 지난 4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연습실. 2차 오디션에 응시하기 위해 온 120명 가량의 남녀 지원자가 복도를 가득 매운 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모두 들어오라”는 안내가 전해졌다. 연습실에 들어온 오디션 참가자들의 눈이 오디션 안무 과제를 가르치는 홍세정 안무가에게 쏠렸다. “춤 경력이 없는 사람은 어려울 거예요. 모르는 게 있어도 센스 있게 넘어가는 게 중요해요.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마세요.”
이윽고 시범이 이어졌다. 앙아방(발레의 기본 팔동작 중 하나)을 시작으로 고난도 발레자세와 각종 턴과 점프가 계속 나오자 지원자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너무 어려워요”란 말이 터져 나왔다.
홍 안무가는 “테크닉은 안 되도 무대화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라. 발레 전공자들도 오디션에서 탈락했는데 그 이유를 잘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30분 정도 개인적으로 연습할 시간이 주어지자 지원자들은 앞다퉈 복도에서 땀을 흘렸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아랑곳 않고 바닥을 몸으로 쓸고 다니며 굴러다니는 지원자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드디어 오디션이 시작됐다. 5명씩 호명을 하자 기다리고 있던 지원자들이 대답을 하며 문안으로 들어갔다. 초초한 지원자들은 친한 동료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오디션을 치르는 와중에도 지원자들은 시종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같은 꿈을 향해 전진하는 이들은 경쟁자라기보다 동지애가 더욱 강했다. ‘싱글즈’ ‘두드림러브’ 등 12개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김세원(29)씨는 “여자들과는 많게는 열 살 정도 차이나지만 남자 중에서는 중간 정도의 나이다. 다들 자주 오디션에서 만나다보니 다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하면 할 수록 재미있고 열심히 하고 싶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어린 친구들이 올라와 오디션이 더 힘든데 아직은 내 꿈을 위해 달려가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조 베가스 역을 꼭 따내고 싶다. 될 거라고 생각하고 왔다. 그 역이 제일 잘 맞는 거 같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페임’은 유명한 작품이다. 때문에 대부분 지원자들은 이 작품의 음악과 춤이 어느 정도는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 앞에 서자 머리 속이 하얗게 됐다. 오디션 음악이 흘러나오자 5명의 지원자는 일사분란하게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차가 드러났다. 안무를 잊어 다른 지원자의 동작을 따라하거나 턴을 할 때 방향을 틀리고, 타이밍을 놓치는 지원자도 있었다. 한쪽 어깨를 바닥에 대고 뒤로 도는 ‘물고기 자세’에서는 방향을 잘못 잡아 다른 지원자와 부딪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열이면 열 모두 오디션을 끝내고 나갈 때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숨과 허탈한 미소를 보였다.
오디션을 마치고 나온 김수연(22·여)씨는 “동작 자체보다 안무 선생님이 짠 안무에 맞는 느낌을 내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춤이 이렇게 어려운 오디션은 처음인 거 같다. 될지 안 될지 전혀 감이 안 온다”고 말했다.
2팀의 오디션이 끝나자 신춘수 오디뮤지컬 컴퍼니 대표와 이지나 연출 등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오디션 안무치고 너무 어려웠던 거 아닌가요?” “앙상블 정도면 몰라도…” “아니에요. 춤이 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잠시 의견을 나눈 심사위원들의 눈초리가 더 예리해졌다. 신 대표는 “전체적으로 예전에 비해 배우의 기량이 많이 향상됐기 때문에 오디션이 더욱 치열해졌다”면서 “이번 오디션에서 떨어진다고 실력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배역에 적합한 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순간에 자기의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배역을 잘 이해하고 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페임’은 뉴욕 예술 학교에 새로 입학한 학생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연기자, 가수, 발레 등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학교 안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좌절, 사랑과 우정 등이 표현된다.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이야기 구조상 익히 알려진 배우보다 실력 있는 신인배우를 발굴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오디션은 1차 때 850여 명이 지원했다. 주역부터 앙상블까지 20여 명이 이번 오디션을 통해 선발될 예정이다. 실력만 있으면 일약 스타탄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1999년 호암아트홀에서 국내 초연한 ‘페임’은 지금까지 4차례 공연됐다. 김소향 배해선 추정화 임춘길 방정식 박동하 김다현 등의 뮤지컬 배우가 이 작품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새 얼굴로 채워질 뮤지컬 ‘페임’은 5월 18일부터 6월 27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