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미쓰이 계열사 250회 방문·압박… ‘이야기 공원 위령비’ 5년만에 결실

입력 2010-03-09 21:27


제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③광산업 장악한 최대재벌 미쓰이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 위치한 야마기공원에는 ‘징용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다. 한적한 시골역인 히가시야마기역에서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공원 정상 한쪽에 이 위령비가 보인다. 오무타시에 위치했던 미쓰이 3개 계열사의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광복 전에 숨진 조선인 징용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5년 건립됐다.

일본 전역에 이런 종류의 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마기공원 위령비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공들여 꾸민 덕에 다른 지역 석비와 달리 외관이 결코 옹색하지 않고 위엄이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해당 기업과 시 당국 명의의 애도문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위령비 뒤쪽으로 돌아가면 별도의 건립문 글귀가 뚜렷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땅에 징용되어 고생하고 돌아가신 영령에 대해 깊은 애도의 의를 표함과 동시에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전후 50년째 되는 해를 맞아 여기에 위령비를 건립한다. 1995년 3월 길일(吉日). 오무타시, 미쓰이석탄광업㈜ 미이케광업소, 미쓰이동압화학㈜ 오무타공업소, 전기화학공업㈜ 오무타공장.’

조선인 강제동원에 적극 나섰던 일본 기업들의 평소 역사인식에 비쳐보면 이 같은 건립문은 상당히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세운 것일까. 그건 아니다.

이 위령비와 비문은 사실상 거의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그 숨은 주인공이 재일교포 우판근(72)씨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간부로 오랫동안 일했다. 현재 민단 오무타지부 단장을 맡고 있다.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재일교포 인권 문제에 오래전부터 천착해 지역사회에서는 꽤 널리 알려졌다. 한국 정부로부터 ‘2006 유공 재외동포 정부포상’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징용자 유골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다 1990년부터 위령비 건립에 뜻을 두고 오무타시의 미쓰이 계열사들을 상대로 장시간 설득 작업을 벌였다. 3개 회사를 무려 250회 찾아갔고, 때론 “평생 걸려도 세우겠다”며 압박해 결국 5년 만에 뜻을 이뤘다. 우씨의 굳은 의지에 감복한 해당 기업 측에서 건립 비용을 부담했다. 부지는 오무타시가 무상 제공했다. 95년 4월 제막식 때는 지역 국회의원들과 시장, 시의회 의원, 기업 관계자 등 300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4월 첫째 주 일요일에 추모제를 갖는다.

우씨는 “위령비에 시 당국과 기업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건 당사자들이 조선인 강제동원 및 사망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라며 “희생자 유족들을 확인해 올해 15회째 추모제에서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라오(구마모토)=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