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작품수도 적고 중량감도 떨어지고… 한국영화, 3∼4월엔 개점휴업?
입력 2010-03-09 17:43
“볼 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
올 봄도 어김없이 한국 영화 기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3월은 전통적 비수기지만 올해 한국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춘궁기를 겪고 있다. 영화 ‘의형제’와 ‘하모니’가 각각 480만, 210만명을 넘어서며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한국 영화 개봉작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없는 실정이다. 반면 ‘아카데미 특수’를 업은 외화는 양적으로도 우세를 보이며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중량감 떨어져=영화계에 따르면 3∼4월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모두 11편이다. 3월 개봉작은 나문희·김수미 주연의 ‘육혈포 강도단’, 감우성 주연의 ‘무법자’, 유지태·윤진서 주연의 ‘비밀애’ 등 상업영화 3편과 박진성 감독의 ‘마녀의 관’,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 장동홍 감독의 ‘이웃집 남자’, 극장판 TV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등이다. 4월엔 김남길 주연의 ‘폭풍전야’와 유오성 주연의 ‘반가운 살인자’ 등 4편이 개봉될 예정이다.
같은 기간(3∼4월) 2008년에 17편, 2009년에 18편 개봉했던 것에 비춰보면 거의 절반 가까이 준 수치다. 지난해 이 기간 ‘박쥐’, ‘7급 공무원’과 ‘똥파리’ 등이 개봉했던 것에 비하면 중량감도 떨어지는 편이다.
문제는 이같은 한국 영화 기근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4월 말 개봉 예정인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제외하고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 나홍진 감독의 ‘황해’ 등 올해 기대작들은 하반기에 집중 배치됐고,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이창동 감독의 ‘시’ 등은 개봉이 5월 칸영화제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CJ CGV 이상규 부장은 “‘하녀’, ‘방자전’, ‘포화 속으로’ 등 기대작들이 5∼6월에 개봉될 예정이어서 한국 영화 기근 현상은 5월에나 풀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로빈훗’, ‘슈렉4’ 등 할리우드 대작들과 맞물려 개봉하기 때문에 이후 상황도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투자 심리 위축 우려=일부에선 한국 영화 기근 현상에 대해 최근 2년간 영화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줄어든 데서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 2007년 4612억원에 달했던 영화 투자 규모는 2008년 3401억원, 지난해 3187억원으로 내려앉았다. 주요 투자자들 역시 경기 불황 여파와 투자 심리 위축 등으로 2007년 하반기부터 투자 지분을 50%에서 30%로 하향 조정하는 등 보수적인 투자 양태를 보였다.
또 독립영화계가 독립영화전용관 등을 둘러싸고 영화진흥위원회와 갈등을 빚으면서, 이 시기 개봉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독립영화의 숫자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영화전문가들은 한국 영화 화제작 수가 줄어들면, 관객의 우리 영화에 대한 기대 심리가 떨어지면서 결국 투자 위축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이상용 평론가는 “개봉 편수가 적다는 것은 관객이 한국 영화의 매력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지난해 ‘워낭소리’부터 이어져 온 다양성 영화, 특히 독립영화 열기가 한풀 꺾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3∼4월 개봉하는 영화가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치면, 한 해 한국 영화 전체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지게 돼 관객 점유율 하락과 투자 위축 현상의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당국의 지원과 보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