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권자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입력 2010-03-08 20:01
경남지사 선거에 나서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 없이 사표를 내고 지방에 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이 출마 결심을 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을 노골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그의 유력한 경쟁상대인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나는 당이 어려울 때 몸을 던진 조강지처”라면서 이 전 장관을 “낙하산 타고 내려온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 의중만 있으면 공천은 떼놓은 당상인 양 여기는 이 전 장관이나, 지난 대선 때의 기여도를 내세워 공천을 받아야겠다는 이 전 총장이나 안중에 유권자가 없기는 오십보백보다. 한나라당 텃밭이라 해서 공천이 곧 당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역정서에 매몰된 예전의 유권자가 아니다. 18대 총선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대통령 의중이나 당 기여도를 공천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지방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행사다. 누가 더 대통령과 가깝고 당을 위해 헌신했냐를 가리는 것은 전당대회에서나 하는 일이다.
한나라당 정병국 사무총장은 “공천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수용자 중심의 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 도덕성을 공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밀실공천을 없애고 철새 정치인과 비리 전력자를 배제하겠다고도 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껏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공약(空約)이다. 지방선거 공천이 지난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계파 이익에 따라 좌우된다면 한나라당에 거는 미래는 암담하다.
민주당도 예외일 수 없다. 지지도에서 한나라당에 형편없이 뒤져있어 새 인물 영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류, 비주류 모두 얼마 되지 않는 기득권에 연연하는 모습으로는 유권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 기득권의 과감한 포기 등 한나라당 이상으로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있을 때 비로소 4년 전 참패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눈 크게 뜨고 어떤 당이 적임자를 공천했는지 꼼꼼하게 살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정당들이 공천 갖고 장난치는 일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