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당신들의 죽음

입력 2010-03-08 19:58


“나그네여, 스파르타인들에게 우리가 조국의 명을 받아 이곳에 잠들었노라고 전해 달라.”

옛 그리스의 전쟁터 테르모필레에는 이 같은 구절을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테르모필레는 BC 480년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300여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이 2만여명이 넘는 페르시아군에 대항했다가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2500여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죽음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몇 년 전 이들의 활약을 그린 ‘300’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군인의 죽음 가운데 이처럼 오래 기억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미국 수도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꺼지지 않은 불꽃’이 타고 있는 그의 묘지에는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더 인상적인 것은 무명용사를 위한 의식이었다. 워싱턴 시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무명용사 묘지 앞에서는 매일 1시간마다 위병들의 교대식이 있다. 긴장되고 경건한 의식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군인들이 있었음을 환기시킨다.

한국에서 군인의 죽음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부끄럽지만 생각나는 것이 많지 않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고 강재구 소령의 죽음을 기념했다.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강 소령은 1965년 10월 월남 파병을 앞두고 최종 훈련 중 한 병사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을 던져 막아내고 산화, 수많은 부하들을 구했다. 2006년 서해교전에서 목숨을 잃은 6명의 군인에 대한 기념식이 매년 열려왔지만 해군 차원에서 기념하던 것이 2년이 지나서야 정부 차원 기념식으로 승격됐다.

지난주 훈련 중이던 공군 F-5 전투기와 육군 공격용헬기 500MD 추락으로 군은 정예 군인 5명을 잃었다. 공군 조종사 고 오충현(43) 대령, 어민혁(28) 소령, 최보람(27) 대위와 육군 박정찬(45) 준위. 양성운(32) 준위.

강원도 강릉 제18비행단에서 지난 6일 열린 공군 조종사 3명의 영결식에 갔다. 영결식에는 잘 가는 편이 아니다. 눈물이 많아 취재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이번에는 가야 했다. 보도자료에 실린 활짝 웃고 있는 고 오 대령의 얼굴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조종사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가 나면 우리는 마치 큰 죄를 저지른 죄인같이 느껴진다.”

영결식은 눈물 속에 치러졌다. 어린이용 조종사복을 입은 어 소령의 다섯 살 난 딸이 머리에 아버지를 잃었음을 나타내는 흰 머리핀을 꽂고 친척 어른에게 안겨 들어오는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조종사복에는 대위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어 소령이 보관해온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 영정 앞에 선 그 딸은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거수경례하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영결식장에 공군 이외 국방부나 합참 간부, 육군이나 해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영결식장을 떠나며 오 대령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족과 소속 군, 그리고 그들을 아는 이들 외에 누가 얼마나 오래 기억해줄까.

우리나라의 보훈 정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과는 자주 비교된다. 미국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 대해서는 감동적일 정도로 예우를 해준다.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장에서 사망한 가족이 있음을 나타내는 성조기가 걸려 있는 집을 지날 때면 그와, 혹은 그녀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도 숙연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죽음을 ‘당신들의 죽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죽음’으로 여기는 것 같다.

북한의 위협을 머리에 안고 사는 우리로서는 군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들의 희생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일인 것 같다. 군은 사기를 먹고 자라나는 집단이라고 한다. 사기는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최현수 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