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문제는 교장이야, 바보야!

입력 2010-03-08 19:55


“교원평가제는 교사들뿐 아니라 부적격 교장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기자가 되기 전 아주 잠깐, 그러니까 딱 한 달간 교사를 했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지 않은 탓도 있지만 한 달 만에 교직을 떠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는데 평소 생각하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교장의 권세가 대단했고, 그 절대적 권력 앞에 교사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렸다. 학교에 겨우 익숙해질 즈음 교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장학관 순시가 있을 예정이니 서류를 정리해놓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한 일인데다 분량도 방대했다.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제출했는데 왜 이제 가져오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거기다 대고 갓 들어간 주제에 말대꾸를 해버렸다. 교장은 서류를 집어던졌고 나는 짐을 싸들고 나왔다.

사대를 졸업해서 교사 친구가 많고, 대학 때 만난 아내까지 교직에 있다 보니 학교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면서 잠깐 몸담았던 그 학교가 유별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분위기를 설명해 공감을 얻어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특히 교육계의 가장 큰 문제가 교장에게 있다고 말하면 선뜻 수긍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 인식에 교장선생님은 항상 훌륭한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직사회에는 크게 두 가지 성향의 교장선생님이 있다.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 있는 교장과 행사나 공사(工事)에 관심 있는 교장이다. 불행하게도 기자가 느끼기로는 후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최근 주변에서 들은 경기도 고양시 한 중학교 교장을 보자. 학생들의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교사들과 논의한 적이 거의 없다. 관심은 학교 건물구조를 바꾸는 일과 교육청에서 예산을 따오는 일이다. 덕분에 학교는 1년 내내 공사판이다. 물론 시공업체는 교장이 수의계약으로 선정한다. 유일한 생산적(?) 업무는 아침에 창 밖으로 지각 교사를 체크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반대하는 교사들에게는 보복인사를 한다.

학교에서 교장의 권력은 가히 제왕적이다. 그리고 교장에 대한 사회의 우호적 인식은 제왕적 행동에 힘을 실어준다. 견제가 없으면 성군도 결국 폭군으로 변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 같은 학교 풍토가 오늘날 교육계를 비리 온상으로 만들고 공교육의 부실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아이들 학업성적이 좋고 학부모 만족도가 높은 학교에는 교육에 헌신적인 교장이 있다. 반면 교장이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돈과 전시성 행사, 아이들 복장에만 신경 쓰면 교사들도 교육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복장검사만 하게 된다. 어떤 교장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어떤 교장은 학교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교장이다. 훌륭한 교장이 많아야 공교육이 산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교장 배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제도는 이와 거리가 먼 것 같다. 교감·교장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지구상 거의 유일할 국가라는데, 그 자격증 따는 방식도 후진적이다. 점수 쌓기 게임이다. 벽지 근무를 자청해 점수를 쌓고 연구보고서를 수시로 제출해 점수를 쌓는다. 대학원을 수료하면 점수가 보태진다. 체육교사는 운동부가 대회에서 입상하면 점수가 추가된다. 교사 수에 비해 체육교사 출신 교장이 많은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련의 점수 축적 과정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훼손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단 교장이 되면 4년씩 두 번, 그러니까 8년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게 8년을 교장으로 지내면 대부분 정년퇴직 무렵이 되지만 제왕 자리를 내놓기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장공모제가 도입돼 다시 한번 교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교장자격증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는 초빙형 공모제는 그렇게 교장 임기 연장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장학사나 교장이나 매한가지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해야 할까.

교원평가제는 부적격 교사 퇴출보다는 오히려 부적격 교장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공교육이 회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