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선진화 현장을 가다-① 한국전력] 2009년 1조4000억 절감·파격 인사… “한전이 뒤집혔다”
입력 2010-03-07 18:54
‘공기업=공룡조직’ 등식이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공기업에서도 인사와 조직, 재무 등 경영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혁신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경영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지 않으면 공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군살빼기, 경영혁신 현장을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자에 싣는다.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8시. 서울 공릉동 켑코(KEPCO) 아카데미(한국전력 연수원)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전 사업소장 30여명이 오후 4시까지 8시간 안에 이곳에서 함께 근무할 직원을 직접 선발해야 했다. 사업소장들은 휴대전화 등 통신기기를 반납한 채 1인 1실로 격리된 독방에 갇혀 PC를 통해 직원들의 인사정보를 조회하면서 인선작업에 신중을 기했다.
한전이 2년째 실시한 ‘인사 드래프트제(필요한 직원을 선택해 데려오는 방식)’의 단면이다. 지난해 초 공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한전이 도입한 드래프트제 인선 방식은 주요 공기업으로 확산되면서 공기업 경영혁신 사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공기업 혁신의 선두주자로 나선 한전의 변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12일 열리는 한전 주주총회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상임이사(7명)들의 1인당 보수총액을 1200만원 정도 줄이는 내용의 안건이 처리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1인당 7000여만원씩 삭감됐었다. 한전 관계자는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임원들의 보수한도를 높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직의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LG전자 부회장 출신인 김쌍수 한전 사장. 2008년 8월 그가 취임한 이래 한전에는 각종 사내 보고서가 3장을 넘지 않는다. ‘리포트 123’이라는 보고문서 작성 매뉴얼 때문. 직원들은 문서 작성 시 실적은 1장, 계획 및 검토사안은 2장, 첨부자료는 3장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보고서 용지 절약은 김 사장이 진행 중인 ‘경영혁신’의 요약판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실시된 한전 인사에서는 본사 처·실장 및 사업소장 등 핵심간부의 76%가 바뀌었다. 전체 팀장급에서는 40%가 교체됐다. 차장급 이상에서는 52명이 옷을 벗었고, 올해의 경우 68명이 무보직 발령을 받았다. 이른바 ‘무한경쟁 인사 시스템’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조직 군살빼기도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김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비서실 인원부터 30% 감축한 데 이어 6개월 만에 본사 2420명, 자회사 3425명 등 정원을 5845명이나 줄이고, 24처 89팀이었던 본사 조직도 21처 70팀으로 축소했다. 판매사업소(16개)와 송·변전사업소(11개)는 13개 통합본부로 뭉쳤고 37곳에 달하는 물류센터도 14곳으로 정리했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한전이 뒤집혔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조직개편이었다. LG전자 시절부터 ‘혁신 전도사’로 불리는 김 사장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주목받은 조치였다.
김 사장이 주도하는 한전의 경영혁신은 ‘TDR(Tear-Down & Redesign)’ 시스템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TDR은 문제 발생의 원인을 풀어헤쳐서(Tear Down) 시스템과 생산방식을 원점부터 새롭게 재구성(Redesign)하는 혁신 활동이다. 한전은 고강도 긴축경영 및 전사(全社)적 차원의 TDR 활동으로 지난해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했다. 변압기 교체기준 개선을 통해 1975억원, 외주축소로 2692억원, 직원 임금인상분(592억원) 반납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의 결과다.
김 사장은 “한전의 역할은 전기요금을 1%라도 더 줄여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며 “임직원 모두가 경영효율화를 위한 혁신활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