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언어·문화장벽에 ‘왕따·가출’… 비상구가 없다

입력 2010-03-07 18:46


다문화가정 아이들 중 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중간입국자녀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나 문화 차이로 인한 한국사회 부적응이다. 태어나서 자란 환경이 다르다보니 제도권 교육에 편입돼도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은 일부 자원봉사단체에서 운영하고 있을 뿐이어서 이들을 한국사회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사회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부적응 못견뎌 모국행, 가출과 성매매까지=몽골 출신인 A군의 어머니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획득했다. 그러나 2003년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당시 몽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던 A군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A군은 곧바로 한국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학교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A군은 40∼50일씩 장기결석을 하기 일쑤였고, 폭력서클에 가입해 경찰서에 드나들며 문제를 일으켰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A군을 결국 입국 5년 만인 2008년 몽골로 돌려보냈다.

베트남에서 살던 B양은 2002년 베트남 부모와 함께 입국해 초등학교 4학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어에 익숙지 못했던 B양의 성적은 최하위 수준이었다. 언어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학원에도 갈 수 없었다. B양은 인근 자원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3회씩 자원봉사 대학생에게 한국어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러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B양이 중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는 B양이 더 이상 한국 교육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판단, 본국 친척에게 보냈다.

한국인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2007년 입국한 중국인 C양(당시 17세)은 한국생활 초기부터 새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 아버지의 집안에서는 노골적으로 C양을 배척했다. C양은 결국 입국 6개월 만에 가출했고, 길거리를 전전하다 성매매 유혹에 빠졌다. 가출 1년 만에 집에 다시 돌아왔지만, C양은 현재 별다른 일 없이 인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지내고 있다.

◇언어와 문화차이 극복 못해=중간입국자녀를 포함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한국 입국 뒤 맞는 가장 큰 난관은 언어 문제다.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제도권 교육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취학 전 따로 언어교육을 해주는 기관도 거의 없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언어능력이 일반 한국 학생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건복지가족부가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아동 912명을 대상으로 언어발달 테스트를 한 결과 언어발달 상태가 지연·지체 또는 장애로 나타난 아동은 349명(38.2%)이었다. 특히 2세 아동의 경우 80%가 언어발달 정상을 보였지만, 6세 어린이는 언어발달 정상이 30%대에 불과했다.

특히 C양처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새로운 아버지를 만난 경우에는 어려움이 가중된다. 중간입국자녀들은 새 아버지의 집안으로부터 배척받고, 가정과 학교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기 쉽다. 언어와 인종의 차이에서 오는 구분은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다문화센터 관계자는 “중간입국자녀의 경우 학교에 배치돼도 왕따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3∼4개월씩 장기결석 하는 예가 많다”며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직폭력이나 성매매 등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손 놓은 정부, 대책마련 시급=중간입국자녀들은 그동안 사실상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다.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한 한국어교실를 운영 중인 희년선교회 이헌용 총무는 “중간입국자녀들의 문제는 그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고, 정부도 사실상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며 “소수의 학생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보니 이들을 위한 교육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다문화센터 김성회 사무총장은 “미국의 경우 이민자나 조기유학생을 대상으로 어학코스를 밟게 하거나 학교 안에 특별반을 운영, 집중 교육토록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것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나서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