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미술, 작품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상상의 나래를 펴세요

입력 2010-03-07 17:19


문화를 즐기는 데 특별한 지식이나 방법이 필요하진 않다고 본다. 하지만 문화에 대해 약간의 소양을 갖추면 즐거움은 배가된다. 앞으로 6주 동안 일반 성도들이 기독교 미술문화를 즐기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팁을 제공하고자 한다. 국내 유명 기독교 미술인들이 참여한다.

성서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은 기독교 미술로 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성경과 상관없이 풍경화 정물화 추상화를 전시하며 ‘기독교 미술 전시회’라 하면 ‘이것도 기독교 미술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우선 미술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미술은 서양의 예술 즉 ‘ART’를 일본식으로 번역하면서 생긴 용어다. ‘ART’는 라틴어 ‘ARS’, 즉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이어 17∼18세기에 이르러 ‘ART’는 ‘아름다움’(불어로Beaux-Arts, 영어로 beauty Art라는 의미)으로 이해됐다. 그러면서 ‘미술’은 ‘아름다움의 기술’을 의미하게 됐다.

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ART는 ‘새로움’을 의미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사람 혹은 정물을 그렸던 미술은 새로운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 중심에 입체파인 피카소가 있다. 그는 원근감, 아름다움을 던져버리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것이 추상미술이요, 현대미술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더 나간 것이 ‘전위미술’이다. 전략적으로 ‘새로운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 전위미술은 흉측한 물건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으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새로운 충격을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다시 보고 생각하게 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전위미술의 경향은 현대미술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앤디 워홀은 1960년대 이후 메릴린 먼로나 케네디 등의 대중이미지를 그려 팝아트를 만들고, ‘후기 현대미술(Post Modernism)’시대를 연다.

기독교 미술도 이 같은 현대 미술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대의 기독교 작가들 역시 이 같은 ‘새로움’위에 기독교 정신을 담는다. 작가의 신앙과 정신을 ‘새로운 충격’, 혹은 ‘새로운 시야’에 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미술 작품은 ‘새로움’뿐만 아니라 작가의 신앙적 의도까지 생각하며 감상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미술작품도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느낌과 감성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사가들은 작품 해석은 오로지 감상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감상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곧 작품해석이라는 것이다. 즐겁고 다양한 생각으로 자신 있게 다가가 무엇을 그렸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작가에게 물어보듯 상상하는 것, 이것이 미술을 감상하는 법이다. 절대 어렵지 않다.

기독교미술을 감상하고 싶다면, 우선 어렵고 내가 모르는 세계라는 벽을 과감하게 깨야 한다. 그리고 내 나름의 해석, 자기만의 상상을 중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천지 만물에 하나님이 계시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 혹은 가장 흉측하고 더러운 것도 어떤 시각, 어떤 생각, 어떤 상상으로 보느냐에 따라 마음의 양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함과 아름다움이 깃든 다양한 미술 작품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승훈 사이아트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