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도 연극은 계속된다… ‘유랑극단 쇼팔로비치’ 명동예술극장 무대
입력 2010-03-07 17:34
하루를 온전히 사는 것도 힘겨운 주민들은 이들에게 억눌린 감정을 쏟아낸다. “세르비아 절반이 초상집인데 저것들은 연극을 하겠다니!” “시체더미 앞에서 예술을 한다고?” “저 곡물 시장 앞에 사형대를 못 본 건 아니겠지?” 배우들이 “전쟁 중이라고 예술까지 그만둬야 하나”라고 반문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친 상말과 위협뿐이다.
유랑극단에게 연극은 삶 그 자체다. 빵 굽는 사람이 빵 가게에 있고, 대장장이가 대장간에, 방앗간 주인이 방앗간에 있듯 배우는 연극 무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극과 빵을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연극은 생존 이후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연극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연극이 삶과 유리될 수 없음을 은근하게 이야기한다.
유랑극단은 연극을 하려고 마을에 가지만 바로 경찰에 잡힌다. 소품인 나무칼은 흉기로, 연극 속 배역 이름은 신분 위장을 위한 가명으로, 홍보활동은 공공장소에서 집회를 선동한 것으로 오해받는다.
유랑극단이 꿋꿋이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마을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주민 기나의 아들 세쿨라가 독일군에 잡혀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연극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실에 개입해 상황을 변화시킨다.
오직 사람 죽이는 것만 아는 사형집행인 드로바츠는 유랑극단 여배우 소피아를 보면서 사랑에 빠진다. 소피아는 두려웠지만 자신이 연기했던 약초꾼 연기를 해 드로바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는 드로바츠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연극이 한 개인의 현실에 개입한 것이다. 결국 세쿨라는 드로바츠의 손을 피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단원인 필립은 평소에도 현실과 연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유랑극단이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나무칼로는 용의 배를 가를 수 없고, 독재자를 찌를 수 없단 말인가? 나무칼로는 쇠칼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단 말인가?”라고 외치며 극단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뜬금없이 연기를 하는데 모든 대사가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는 나무칼을 들고 연기를 한 것뿐이지만 살인범으로 오해받고 현장에서 총살당한다. 덕분에 살인혐의를 쓰고 있던 세쿨라는 무죄가 된다. 필립의 나무칼이 세쿨라를 구한 것이다. 극단장인 바실리예 쇼팔로비치는 말한다. “일어났던 모든 일은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우리 운명의 일부입니다.”
‘유랑극단 쇼팔로비치’는 세르비아 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가 1975년 발표한 작품으로 85년 데얀 미야치가 유고극립극장에서 초연했다. 이병훈 연출은 “연극의 상상력에 대한 오마주이며, 연극의 힘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라면서 “연극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투철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되며, 오늘날 한국연극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1644-2003).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