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60년’… ‘회혼례’ 치른 이정열 할아버지·신용순 할머니

입력 2010-03-05 17:57


1950년 2월4일 경기도 양평군 양동 소꼴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신서방네 맏딸 용순이가 강원도 횡성 거슬치로 시집가는 날이었다. 살기 어려운 때였고, 살림도 넉넉지 못했지만 맏사위 맞는 날이라 부엌에선 고깃국이 끓고, 마당에선 지글지글 전이 익고 있었다. 초례청에 들어선 신랑을 보고 동네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덕수 이씨 집 자제라네” “눈도 크고 이마도 나오고 조선사람 같지 않네.” “인물이 훤하구만.” 열여덟 수줍은 신부는 신랑을 쳐다볼 수 없었다.

2010년 2월25일 서울 서교동 규수당에서 파티가 열렸다. 이정열(79) 할아버지와 신용순(78) 할머니의 회혼례(결혼 60주년)를 맞아 2남2녀가 마련한 자리다. 100석의 홀을 가득 메운 친지들. 기념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뽀뽀하세요”라고 외쳤다. 하하 호호 “의 좋으신 거 아는데 한번 보여주세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꼭 잡으셨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할아버지 옆에 선 할머니는 꼭 60년 전처럼 수줍게 미소만 지었다.

“초례청 들어서는 신부가 하얀 달덩이 같았어요. 황홀했지요. 지금 이 나이에 이렇게 예쁜 사람 없어요.”

할아버지 칭찬에 할머니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얼굴을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봤다고 했다. 6·25가 터져 군에 갈 때 처음 똑바로 쳐다봤다고.

“이목구비가 훤칠한 게 정말 미남이었어요. 지금 나이가 들어도 인물이 좋잖아요.”

할머니 말씀이 싫지 않은지 허허 웃던 할아버지는 “우리 집사람, 없는 집에 시집 와서 고생 엄청 했다”고 했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자식들을 이렇게 잘 키울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할머니 손을 잡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 교육 제대로 시키겠다며 서울로 오는 결단을 이 양반이 내리지 않았다면 강원도 골짜기에서 무슨 수가 있었겠느냐”며 할아버지에게 공을 돌렸다.

군에서 행정을 봤던 할아버지는 공부가 짧아 고생했고, 자식들만큼은 잘 가르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강원도에서 화전을 일구며 근근이 살던 이들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가 1970년.

“그 고생을 어떻게 다 말해요. 이 양반이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는데, 하루 일하면 아파서 하루 쉬어야 했어요.”

엎친 데 덮친다고 할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려 병원비 마련하느라 단칸방도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더부살이를 했다는 이들은 그 어려운 중에도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정을 이루게 해주신 하나님, 또 지게 지더라도 자식은 가르치겠다는 이 양반을 믿었어요.”

할머니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낼 수 있다는 배짱과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인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이날 할아버지는 칠불출 팔불출을 자처했다. “난 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자가 살림을 챙겼고, 학교 입학식 졸업식 한번 가본 적 없는데 자식들이 알아서 공부해 모두 잘 됐습니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잘 살고 있는 우리 며느리들 얼마나 고운지 모르겠습니다. 내자와 자식들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용돈을 모아 마련한 금쌍가락지를 딸 며느리에게 선물했다. 쌍가락지를 받은 이들의 입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눈에는 살짝 물기가 어렸다.

맏딸 재희(58)씨는 “오늘 회혼식이어서 대례복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낭비라고 마다셨다”면서 “그렇게 알뜰한 두 분께서 금가락지를 해주셨다”고 눈물이 글썽했다. 맏며느리 김정태(50)씨는 “본받을 게 정말 많은 분들”이라면서 “남편과 의견이 다를 때마다 제 편을 들어주는 멋쟁이 어머님”이라고 자랑했다.

둘째며느리 이병년(48)씨는 “친정 부모님보다 잘해주시는 분들로, 큰소리 내는 것을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막내딸 재임씨(47)는 “부모님은 관심을 가지돼 간섭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우리를 키워 자립심을 길러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반짝반짝 금쌍가락지를 낀 안사람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큰아들 재은(54)씨는 “살림이 어려워도 얼굴 한번 찌푸린 적이 없는 분들로 부모로서, 인생선배로서 존경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막내 사위 김대녕(47)씨도 “정말 한결 같은 두 분”이라면서 “두 분처럼 사이좋게 살고 싶다”고 했다. 둘째 아들 재웅(50)씨는 “자식들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셔서 두 분이 고생하신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며 울먹였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오늘의 화목과 유복이 서로의 덕이라고 미루는 모습에 친지들이 모두 박수를 보냈다.

마주 풀었던 귀밑머리가 파뿌리 된 이들은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속마음을 가늠한다. 변한 시대에 맞춰 자식들 재금 내보내고 두 양주만 살만큼 신식인 이 노부부도 요즘 툭하면 헤어지는 세태가 안타까운지 한마디 했다. “서로 믿으면 뭐가 문제겠어요. 믿고 살아야 하는데… 참을성도 부족하고… ”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