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인간적이다’ 펴낸 성석제… “사람들 이야기 소설로 엮는 긴장감이 좋아”
입력 2010-03-05 17:54
입담, 재치, 해학, 풍자, 거기에 눈물 한 방울 찔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소설가 성석제(50)의 소설에는 인간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단편이든, 중장편이든 그 길이는 작가가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의 신작 ‘인간적이다’(하늘연못)에 담겨있는 이야기 49편 역시 그렇다. 아주 짧은 단편이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어설프고 고집스럽지만 정은 넘치는 우리네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크게 웃길 것도, 그렇다고 엉엉 소리 내 울 일도 자주 없는 소소한 일상의 편린들이지만, 그의 손을 거치는 순간 떠도는 이야기는 문장으로 자리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성석제는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문장으로 포착해 소설로 만들어내는 순간, 소설과 비소설 사이에 있는 그 아슬아슬한 긴장이 좋다”고 말했다.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라는 평론가 우찬제의 말처럼, 그의 소설은 형식과 감정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소설의 틀과 그 안에 펼쳐지는 서사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제가 주변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 때 고민하는 건 이 이야기가 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가죠. 단순하고 표면적인 걸 문장으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에요. 그 경계를 말로 정의내릴 순 없지만, 나 자신이 ‘감득(感得)’할 수 있느냐의 여부와 서사 내부의 자기완결성은 중요한 요소죠.”
‘감득’은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감정의 움직임이다. 작가 스스로 끌리고 작가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제일 중요한 건 독자와의 소통이거든요. 내 소설이 구현하려는 바와 독자들이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이 맞아떨어지면 문학적 거래, 즉 소통이 성립하죠. 이 때 형식적 시론은 중요치 않아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가 좋았다고 했다. 성경과 햄릿은 100번 넘게 읽었다. TV가 없던 시절, 특히 그의 이야기 욕구를 채워주고, 풍자와 역설이라는 장기를 가르친 건 수많은 무협지였다.
“제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실 연민, 눈물 이런 거죠.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웃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내 소설까지 웃는 시간을 뺏으면 곤란하죠. 그러니까 일상의 순간보다는 웃음의 함량을 높이려고 하죠”
그는 삶의 고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을 날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현실의 불의와 사회의 거악에 대해서도 직접 칼날을 겨누지 않는다. 성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삶의 가치가 더 소중함을 깨달아서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눈앞이 컴컴하다 싶으면 곧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도 있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의 진리를 전하며 우리 속을 뜨끈하게 덥힌다.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사는 게 다 그렇고,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라며 당신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이 책을 일독할만하겠다.
글=양지선 기자·사진=홍해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