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믿음의 어머니’를 만난다

입력 2010-03-05 20:21


신안군 증도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성지화 추진

“그의 사택은 차라리 목민센터였다. 그 집은 항상 너댓명씩 귀신 들린 여인, 반신불수가 되어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여인들의 숙소였다. 그는 새벽같이 큰 바랑 같은 것을 둘러메고 나가 누룽지나 잔칫집 음식을 거둬 가난한 집에 나눠주는 ‘대신 거지’였다. 바랑 속에는 감기약이나 연고 같은 게 있어서 병자들을 심방해 부담 없이 약을 먹이고 발라주고 만져주고 기도해줬다. 그는 그 마을의 사제였고 간호사였으며 목자이면서 만인의 어머니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였던 고(故) 김준곤 목사가 생전에 문준경 전도사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김 목사를 비롯, 이만신 정태기 목사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바로 문 전도사의 신앙을 본받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바로 이 문 전도사의 삶과 신앙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세우고 주변을 성지화하는 작업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사랑을 전한 믿음의 어머니=1891년 2월 2일 전남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문재경씨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17세 때 신랑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렀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 첫날부터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자신의 아이조차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한 그녀는 첩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받아내야 했을 정도로 박복한 삶을 살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이는 시아버지였다. 그로부터 한글교육을 받았고, 마침내 당시 유명한 부흥강사인 목포 북교동교회 이성봉 목사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과 전도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성경지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해 공부했고, 실습시간에는 고향에 내려가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임자도의 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도의 증동리교회, 대초리교회 등 많은 교회들을 세웠고,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이 섬, 저 섬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염병’이라 불리던 전염병이 신안의 섬 일대를 휩쓸 때에도 그녀는 1년에 아홉 켤레의 고무신을 바꿔 신을 정도로 부지런히 섬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고,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런 헌신적인 삶의 끝자락에는 공산당이라는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공산당은 그녀와 마을 사람들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내몰고 총살하려고 했다. 그녀의 죄목은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그녀에겐 자녀가 한 명도 없지만 이런 죄목이 붙은 건, 증도 일대의 섬 마을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믿음의 자녀’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1950년 10월 5일.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강했다. “나는 이제 가더라도 우리 교인들에게는 손대지 말고 잘 살펴서 살려 달라.” 믿음의 어머니는 그렇게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증도가 ‘천국의 섬’으로=전남 신안군이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것은 바로 문 전도사의 헌신,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증도는 약 90%의 복음화율을 자랑한다. 이곳이 천국의 섬으로 거듭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권석원 목사)가 문 전도사의 뜨거운 신앙과 헌신의 삶을 후대에 알리고 기리기 위해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을 세우고 주변 일대를 성지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기성 총회본부 교육국장 유윤종 목사는 “순교기념관은 인근 임자면 진리교회의 이판일 장로 외 47명의 순교지, 전남 여수시의 손양원 목사 유적지, 염산의 77인 순교지 등과 연계하는 바이블벨트로 구상 중”이라며 “이와 함께 성결교단의 순교지인 철원 병촌 두암 하리 강경교회 등도 신앙교육 코스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념관이 들어서는 곳은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약 6715㎡. 문 전도사 순교기념관은 건물 중심의 단순한 전시관 형태에서 벗어나 순교와 애국, 헌신이라는 주제가 담긴 인물교육 중심의 체험형 다목적 테마파크 형태의 종합기념관(전시관 자료실 영상관)으로 지어진다.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신앙수련관, 은퇴 목회자들을 위한 실버타운(안식관), 미래의 기독인재를 양성하는 대안학교, 기독교 기념공원 등이 들어선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달 증도에서 수련회를 갖고 이 같은 기념관 건축 방향 등을 논의했다. 문 전도사 순교기념관은 올 상반기 중 착공해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순교기념관 및 수련관 건립에 드는 비용은 52억원 정도. 목회자 안식관이나 기독교신앙 기념공원 등 테마파크 건립에 드는 비용이 150억원이다.

기성은 총회 차원에서 전국 교회 경상비의 0.5%를 건립기금으로 납부하고 있으며 순교신앙계승대회를 열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일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특히 증도 인근 성결교회 800여 성도들은 7개월 동안 하루 품삯 5만원 헌납운동을 벌여 3700여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기성 총무 송윤기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건립은 단지 교단 차원의 사업이 아니라 신안군과 인근 지역, 나아가 한국 교계가 함께 이뤄가야 하는 귀중한 선교사업”이라며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랐다(02-3459-1064).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