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99명 어린이집 권리금 2억”… 보육시설 인가증 웃돈매매 기승

입력 2010-03-04 17:07


보육시설 인가증이 권리금 형태로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신규 허가를 사실상 막고 있는 탓이다. 일부 원장들이 권리금을 메우기 위해 인건비 등을 줄이면서 아이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고 있다.

4일 학원 매매 전문 사이트인 H컨설팅 홈페이지에 서울 금천구에 있는 330.58㎡ 규모의 어린이집이 매물로 나왔다. 허가정원 60명에 현 정원 41명인 이 어린이집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50만원 외에 권리금 1억7000만원이라는 조건이 하나 더 들어 있다. T교육 컨설팅에 매물로 나온 661.15㎡ 규모에 정원 99명인 서대문구 한 어린이집은 권리금이 2억원을 호가했다.

서울지역 어린이집 권리금은 대개 정원에 따라 10명 안팎은 1000만∼3000만원, 20∼30명은 4000만∼6000만원, 50명 이상은 1억원 이상 등으로 가격이 형성돼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어린이집 설립을 1997년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면서 시설 수가 급증했다. 가정 보육시설을 포함한 어린이집은 96년 9622개에서 2008년 2만9800개로 3배 증가했다.

시설 수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복지부는 2005년 1월 다시 신고제를 인가제로 바꿨다. 하지만 출산율 저하 등으로 각 지자체는 현재 신규 인가증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은 대표자 또는 시설장 명의변경을 이용해 웃돈을 주고 기존 보육 시설을 매입한다. 사실상 인가증이 권리금 형태로 거래되는 것이다.

실제 최근 3년간 서울지역 25개 지자체의 신규 인가증 발급 건수는 897건인 반면 인가증 변경 건수는 5233건에 달한다. 변경 인가 건수 중 3000여건이 대표자나 시설장 명의 변경이다.

유아교육 전문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인가증 매매 관련 글이 올해에만 수십건 올라왔다.

업계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정원당 금액을 정해놓고 거래하고 있다”며 “최근 신규 인가 발급 제한 지역이 늘면서 권리금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고가의 권리금을 만회하기 위해 원장이 아이들을 위해 써야할 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거나 전임 교사 대신 파트타임 교사를 운영하는 식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교사 조모씨는 “어린이집의 한 형태인 가정어린이집에서는 거의 대부분 서류상으로만 종일반 교사고 실제로는 파트타임 교사를 쓰고 있다”며 “서류상 인건비와 실제 인건비 차액은 모두 원장 몫이다”고 말했다.

수원여대 이석순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보육시설을 매매할 때 권리금을 제한하고 인가증 명의 변경 과정을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자격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서대 김종건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가증 매매는 사실상 정부가 종용한 것”이라며 “부실 어린이집을 퇴출하는 방식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