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 대신 ‘김 프로’… 기업들 호칭 파괴 바람

입력 2010-03-04 18:28

“김 대리 대신 ‘김 프로’라 불러주세요.”

기업들 사이에 호칭 파괴 바람이 불고 있다. 1990년대 말 일부 인터넷기업에서 ‘과장님’ ‘부장님’ 대신 ‘아무개 님’이라고 부르면서 시작된 호칭 변화는 ‘프로’ ‘매니저’ 등으로 다양해졌다. ‘주임’ ‘계장’ ‘지배인’ 등 과거 호칭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의성이 강조되는 21세기 ‘소통이 곧 경쟁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 가장 먼저 호칭 변화를 꾀한 곳은 CJ그룹이다. CJ는 2000년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직급 호칭을 버리고 ‘님’ 호칭을 도입했다. 1만7000여명의 임직원은 직급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님’이라고 부른다. 2006년 이미경 CJ E&M(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회장이 미국 뉴욕에서 세계여성상을 수상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친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이재현님’이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국제화 시대에 맞춰 매니저, 프로로 변했다.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팀원 호칭을 ‘매니저(Manager)’로 통일했다. 팀장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직급을 모두 없앤 것. 매니저는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자기 업무에 전문성과 책임을 지닌 담당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은 사장부터 사원까지 모두 ‘프로’라 부른다. 2007년 김낙회 사장이 취임하면서 아이디어 경영 일환으로 도입했다. 사내에서 프로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자 지난 1일 명함에도 프로라고 공식 표기하기로 했다. 제일기획의 회의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no tie), 직급을 부르지 않는(no title) ‘노노미팅’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CJ는 지난해 14조2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호칭 파괴를 시작한 2000년 4조27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CJ 관계자는 “호칭과 매출 신장을 직접 연결시키는 건 무리겠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신사업 발굴 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제일기획도 모든 직원이 프로가 된 이후 지난 3년간 ‘국제 광고제 34회 수상’ ‘대한민국 광고대상 3연패 달성’ 등 놀라운 결실을 거두고 있다. 김낙회 프로는 “호칭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실거리는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천지우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