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잘 몰라 ‘혜택’ 못받아… 中企 “체결만 되면 저절로 관세 등 이득” 착각

입력 2010-03-04 22:48


#사례1. 국내 귀금속 중간재를 베트남에 수출한 뒤 가공해 완성품을 한국에 다시 수입하는 중소기업 I사. 지난해 한-아세안 FTA(자유무역협정) 소식을 듣고 관세 혜택을 보려 했지만 자국의 부가가치가 적어 베트남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베트남 세관의 답변만 들어야 했다. 그 후 수개월간 FTA 체결 이전과 다름없이 관세를 고스란히 내야 했다.

#사례2. 엘리베이터를 각국에 수출하는 A사. 최근 한-인도 FTA를 활용하기 위해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모든 납품 원·부자재에 수출용 원재료 원산지 확인서를 요구하고, 2주 내로 이를 제출토록 했다. 업체들은 인력도 없는 데다 경험도 전무해 어떤 서류를 챙겨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전 세계 무역의 절반이 FTA 체결국 간에 이뤄질 정도로 FTA는 대외무역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I사나 A사와 같은 중소기업은 여전히 FTA를 통한 관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홍보 부족뿐 아니라 까다로운 행정 절차 때문이다.

◇특혜 관세 활용 ‘저조’=FTA를 제대로 이용하기만 하면 기업들이 얻는 실익은 엄청나다. 4일 국내 관세사법인인 에이원에 I사와 A사 사례에 대해 컨설팅을 의뢰한 결과, I사는 원산지 증명서(CO) 제출 시 6개월 만에 1억원을, A사는 통합서류를 작성한 뒤 제출하면 향후 6년간 120억원의 절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FTA 활용도는 매우 낮다. 지난해 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조사한 ‘FTA 특혜 관세 활용률’을 보면, 2004년 최초로 맺어진 한-칠레 FTA는 수출입 모두 90%가 넘는 반면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발효된 아세안 지역은 각각 수입 27.0%, 수출 14.1%에 불과했다.

한-칠레 FTA는 초기부터 논란이 많아 인지도가 높았던 데다 무역량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지만 나머지 FTA는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무역 중 FTA 체결국 간 무역 비중은 2008년 말 현재 13.9%이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 통합지원센터 마련 등 뒤늦게 부산=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변하는 상황에 곧바로 적응,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원산지 증명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몸집이 작은 기업들은 ‘들어본 적 없다’ ‘복잡하다’ ‘특별한 이점이 없다’ 등 다양한 이유로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

지금껏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던 정부도 미국 및 EU(유럽연합)와의 FTA 체결을 앞두고 통합지원센터 마련 등 기업의 활용도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한 컨설팅 지원과 교육 등을 담은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수출업자에게 복잡할 수 있는 CO 발급도 자율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원산지 인증수출자 제도’를 도입, 기업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기업들 역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관세는 수입업체가 내기 때문에 우리나라 수출 기업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아도 수입업체만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세금이 면제돼 수출품의 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