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김명호] 도요타 때리기 속내 있나

입력 2010-03-04 20:14


지난 2월 2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미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 회의실 증인석에 있던 증인은 청문회가 시작되자 아주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고객의 우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몇 번씩 사과를 했다. 다소 초췌한 얼굴의 증인은 도요다 아키오.

상단에 길게 앉아 있는 하원의원들에게, 비교적 초라한 회의용 탁자 앞에 앉아 있는 도요다 사장은 올려다보며 답변한다. 재판정 같은 구조다. 마치 증인이 상석의 의원들로부터 훈계를 듣고 변명하는, 그런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의원들은 도요타의 대처가 성실하지 못했고, 은폐까지 시도했다고 몰아세웠다. 도요다 사장은 은폐는 부인했지만 책임이 있다며 거듭 사과해야만 했다. 청문회는 미국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는 일종의 정치적 세리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도요타 정신’ ‘도요타 경영 방식’ ‘세계 일류 도요타’ 온갖 찬사를 받던 도요타가 왜 이렇게 됐을까. 단지 부품 결함 때문인가. 하원 청문회를 지켜보며 두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우선 내부 문제. 리콜 직전까지 미국에서 팔리는 100대 중 도요타가 17대로 1위였다. 판매량은 2000년에 비해 2008년에 60% 이상 급격히 늘었다. 단순한 성공신화로 표현하기가 부족할 정도다. 그러나 신화와 더불어 도요타의 재앙은 싹텄다. 어마어마한 양적 팽창은 “고객에 대한 배려 부족”(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국토교통상)으로 나타났고, “우리가 세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결과”(도요다 사장, 워싱턴포스트 기고문)로 이어졌다. “세계 시장 석권을 목표로 한 신모델 개발 집중과 시장점유율 지상주의로 인해 기술과 관리 부문이 양적 팽창을 따라가지 못했고, 따라서 엔지니어들이 점점 실수할 확률이 높아졌다.”(제프리 리커 미시간대 교수) 꼼꼼한 품질관리와 엔지니어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과도한 팽창이 도요타 정신을 실종시켰고, 화려한 성장만큼 내적 충실이 따르지 못한 것이다.

다음 외부 문제. 나는 도요타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를 현재의 미·일 관계에서 찾는다. 과거 정권 때처럼 좋았다면 과연 도요타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지난주 미국 내 도요타 딜러들이 워싱턴에서 집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다른 회사들의 리콜이 수십 건 있었는데도 미국 정부가 유독 도요타만 문제 삼고 있다. 도요타를 불공정 대우하며, 희생 제물로 삼으려 한다.” 요미우리 신문도 “도요타 때리기는 정치의 영향”이라고 분석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레이 러후드 미 교통장관은 “은폐” “비도적” 등 일본이 감정 상할 만한 단어들을 연일 토해냈다. 도요타 압박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상하원의 3개 위원회가 각각 청문회를 연 것은 물론 교통부 고속도로교통안전국, 연방검찰청, 증권거래위원회, 연방수사국(FBI) 전부 달려들어 도요타를 뒤지고 있다. 언론들도 도요타의 부실한 대처와 은폐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연두교서가 있은 직후 주미 일본 대사관은 분위기가 아주 싸늘했다고 한다. 연설 내용 중에 일본 얘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 외교관은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일본을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 적은 최근 몇 년 동안 내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동맹국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있는 나라가 영국과 일본이다.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높은 수준’의 불쾌감을 내보였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시각이다. 그만큼 미·일 관계는 좋지 않다. 지난해 인도양에서 아프간 파견 연합군에 대한 일본의 급유활동 중단,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 미·일은 여러 현안에서 부딪히고 있다.

우리에게 도요타 사태는 아주 좋은 연구자료다. 관련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각도의 심층 분석 보고서가 나와야만 한다. 우리가 이런 험한 꼴 당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워싱턴=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