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死刑
입력 2010-03-04 20:04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반군의 만행은 1984년 개봉된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주인공은 디스 프란이라는 캄보디아인이다. 크메르루주군에 붙잡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킬링필드를 거쳐 태국으로 탈출한 뒤 미국에 정착한 실존 인물이다. 캄보디아 태생의 행 응고르가 그 배역을 맡아 이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차지했다. 크메르루주 잔존 세력이 그에게 복수한 것일까. 행 응고르는 1997년 2월 로스앤젤레스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됐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르완다, 앙골라, 동티모르도 캄보디아처럼 극심한 내전을 겪었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한 나라라는 점이다. 캄보디아는 1989년, ‘인종 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2001년 사형제를 각각 철폐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잔혹한 경험이 한 요인이 됐을 법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까지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이지만, 사형제만 놓고 보면 캐나다나 영국,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사형제 폐지 국가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서부의 토고 등이 합류했다. 전 세계 200여개 나라 가운데 139개국이 사형제를 없앴다고 한다.
사형제를 존치시키고 있는 나라들은 아시아와 아랍권에 밀집돼 있다. 중국은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국가로 꼽힌다.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08년에 1700여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파키스탄이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소 어정쩡하다. 사형제가 있지만 1997년부터 14년째 사형을 집행한 적이 없으므로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불린다. 이 때문인지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사형제 존폐 논란이 벌어지기 일쑤다. 존속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사형제가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폐지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사형제가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헌재가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이후 유사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헌재의 공식 멘트 가운데 “사형제의 존폐 여부는 입법 판단의 대상”이라는 부분이 주목된다. 사형제를 유지할지, 폐지할지는 국회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공을 넘겨받은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국회는 지금까지 세 차례 사형제폐지법을 폐기시켰다. 18대 국회 임기 내에 제대로 논의하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