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사이드] 국제스포츠 무대서 영향력 떨어진 美

입력 2010-03-04 17:55

태권도대회 개최지 표대결서 신생국 아제르바이잔에 완패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것은 1896년이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한 1996년 올림픽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렸다.

아테네는 올림픽의 상징성을 감안해 1996년 대회 개최를 간절히 원했지만 올림픽 상업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욕망을 막지 못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코카콜라와 CNN을 앞세운 미국의 위세에 아테네의 ‘역사적 상징성’ 논리는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목소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미국은 자국내에 ‘아테네’라는 도시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올림픽을 가져갔다. 소련이라는 냉전의 한 축이 무너진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의 이같은 일방주의는 국제사회에 통했다.

멕시코 티후아나 매리어트호텔에서 지난 2일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집행위원회 회의장. 내년도에 열리는 2012런던올림픽 세계예선대회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미국 댈러스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가 경합했다.

과거 같으면 사전조율로 미국 유치로 결말을 내고는 안건 상정 자체를 안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는 사안. 하지만 카스피해 연안의 신생국으로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미국을 23대6으로 일방적으로 물리치고 개최권을 가져갔다.

미국도 대회유치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위원 32명의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한다는 아제르바이잔의 유치조건을 사전에 간파하고는 이 옵션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규정에 어긋난다며 변호사를 동원해 아제르바이잔을 압박하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결국 이를 철회하고 미국과 대등한 조건에서 표대결을 벌이고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지난해 태권도 월드컵대회와 국제 장애인 태권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집행위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은 때문이었다.

미국이 패퇴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9·11 테러이후 한층 엄격해진 입국절차 때문이다. 테러방지를 위해 입국심사가 엄격해지다보니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 참가자들이 많은 불편을 겪어왔다.

이번 세계주니어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차 미국 LA를 경유해 멕시코 티후아나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같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 미국의 비자 발급 거부로 미국대회 출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몽골은 이번에는 아예 유럽을 거쳐 멕시코로 곧바로 들어가는 항로를 택해 무려 3일만에 티후아나에 입성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미국은 국경 너머 바로 코 앞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대회유치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도 좋을 것 같다.

티후아나(멕시코)=서완석 부국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