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를 위한 변명… “a LOT of misunderstanding”

입력 2010-03-05 09:48


이메일 인터뷰 & 한국인 코치·동료 4인 이야기

지난달 27일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한 장면. “‘웬만하면 한국에 오지 마라’를 사자성어로 하면? 안톤 오노.” 앞서 21일 방영된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는 연타였다. “(통신업체를 가리키며) 니들이 안톤 오노야? 형 통장에 들어온 돈을 가로챌 거야?” 또 다른 개그맨은 이렇게 외쳤다. “4년마다 우리에게 씹을 거리를 안겨주는 고마운 안톤 오노!”

지난달 27일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경기 직후. 오노가 반칙으로 실격하자 인터넷은 이런 제목의 기사로 도배됐다. ‘오노, 완전범죄는 없다’ ‘반칙왕 오노 덜미’ ‘반칙이 키운 오노의 꿈, 반칙으로 물거품’ ‘발뺌 오노, 뻔뻔’….

쇼트트랙 미국 국가대표 선수 아폴로 안톤 오노(28).

그가 한국 빙상을 칭찬하면 “가식적”인 게 되고, 한국 선수가 오노를 존경한다는 보도가 나오면 “잘못 전해진 것”이거나 “기자의 곡해”로 돌변한다. 삼성전자는 오노를 광고모델로 썼다는 소문에, 배우 조재현은 “빙상선수 아들과의 인연으로 (예전에) 방한한 오노가 보름간 집에 머물렀다”는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반칙왕, 실격남, 공공의 적, 뻔뻔왕. 따라다니는 수식어만 보면 그는 파렴치범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쯤 문제아로 낙인 찍혀 빙상계에서 퇴출됐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노는 퇴출되지도, 은퇴하지도, 잊혀지지도 않았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누구보다 화려하게 장식했다. 올림픽 3차례 출전이라는 대기록에, 동계올림픽 개인통산 8개 메달(금 2, 은 2, 동 4)획득의 신기원도 이룩했다. 왜 한국 팬들은 한 명의 재능 있는 빙상스타를 이토록 집요하게 미워하는가. 오노를 향한 한국 팬의 불타는 적개심은 정당한 것인가. 오노는 과연 누구인가.

답을 찾기 위해 오노와는 이메일로, 미국 대표팀 한국인 코치 및 동료선수와는 국제전화를 통해 차례로 인터뷰했다. 이메일 답변은 2일 왔다.

오노의 “Kamsami Da”

오노는 1982년 일본계 미국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가족을 떠난 뒤 홀아버지 손에 큰 오노는 이메일에서 “아버지는 내 삶의 기둥이다. 그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아버지가 행복해진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 유키 오노는 12시간 2교대로 일하던 미용사. 돌봐줄 사람이 없던 오노는 여섯 살 때부터 수영과 롤러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해 스케이터가 됐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지난 몇 년간 오노는 말 그대로 한국인에 둘러싸여 살았다. 미국 국가대표팀 전재수(41) 감독과 장권옥(43) 코치, 미국 훈련장인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오발 스케이트장 소속 여준형(27) 코치는 선수 오노를 가장 잘 아는 지도자다. 오노를 “아폴로 형”이라 부르며 따르는 대표팀 막내 사이먼 조(18·한국명 조성문) 역시 이민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은어머니도 한국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이 기억하는 오노와 오노가 기억하는 한국은 많이 달랐다. 그에게 한국은 배려와 호의의 나라였다. “나는 한국인과 아시아 문화에 둘러싸여 자랐다. 한국인과 한국 음식을 사랑한다(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백숙이다). 그래서 2002년 한국에서의 상황(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 선수 실격을 유발한 오노 비난 여론)을 듣고 아주 슬펐다. 한국 팬이 내 쪽 이야기를 듣거나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최근 논란이 됐던 1500m 경기에 대해선 억울해했다. 오노는 경기 직후 손으로 목을 자르는 제스처를 하고 ‘한국 선수 실격을 원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뭇매를 맞았다.

“내 멘트와 액션은 ‘한국 스케이터가 실격될 것 같다’는 뜻으로 미국팀 코치를 향해 한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처럼 실격이 있었다. 절대 한국 코치에 대한 모욕이 아니었다(It was NOT a sign of disrespect to the Korean coach). 그동안 한국에선 정말 많은(이 부분에서 a LOT of라며 강조했다) 오해가 있었다. 쇼트트랙에는 판단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앵글이 존재한다. 누군가 말하거나 쓴 게 항상 정답은 아니다. 쇼트트랙은 과격한 스포츠(wild sport)이고 늘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인 코치와 한국팀에 대해서는 격찬했다. “한국 선수들은 늘 아주 강했다. 그들의 기술에 경의를 표한다. 2007년 한국에서 경기할 때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떠날 때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다. 지미 장(장 코치)과 전재수(감독)는 내가 만났던 최고의 코치다. 그들은 한국인의 놀라운 열정에 한국 문화 특유의 헌신과 노력을 결합시켰다. 그들에게 스케이팅 기술을 배운 건 대단한 영광이다.”

무엇보다 세 차례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걸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쇼트트랙은 선수 수명이 길지 않다”며 “이런 수준의 무대에서, 이렇게 오래 선수로 뛴 것만도 축복”이라고 말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한 미국팀이 훈련에 복귀한 3일(현지시간), 오노는 미국 시애틀 집으로 갔다.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메일 마지막에는 이렇게 썼다. “캄사미 다(Kamsami Da)!” 서툰 한국어 한마디가 누구에게 배운 것이든 마음은 전달됐다. 그건 한국을 향해 오노가 내미는 화해의 악수 같았다.



코치가 본 오노… 인파이터에 대한 오해

전재수 감독, 장권옥·여준형 코치, 사이먼 조 선수까지 네 명에게 “오노만 유독 반칙을 많이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비슷한 답이 왔다. 몸싸움이 잦은 쇼트트랙의 특성이 거듭 강조됐다.

장 코치는 “한국도 반칙이 많다. 사실 반칙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그건 한국이 잘 타기 때문이다. 게임을 많이 하고 견제 받다 보면 반칙이 많이 나온다. 오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조 선수도 “한국에서 (오노만) 계속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전 감독은 스타일 차이를 이유로 들었다. “복싱에 인파이터, 아웃복서가 있듯이 쇼트트랙에도 상대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이)정수, (안)현수 같은 선수가 있는 반면, (김)동성이처럼 공격적인 선수도 있다. 오노는 후자다. 그걸 누가 맞다, 틀리다 그렇게는 말 못한다. 간혹 무리도 하고 실수도 있지만 실수는 실수로 인정해줘야 한다. 경기의 전체 흐름이 아닌 한 부분만 갖고 매도하면 안 된다.”

여 코치는 생존본능으로 설명했다. “아폴로는 경기마다 한국 선수 두세 명에 둘러싸인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쓴다. 한국 선수도 캐나다 선수 여럿과 뛸 때는 전략을 짠다. 그런 의미에서 아폴로는 상대를 속이는 페이크성 행동을 많이 하고, 몸을 부딪치는 작은 동작을 많이 사용한다. 경기운영 스타일상 반칙으로 보이는 행동이 많은 것이다.”

쇼트트랙은 축구 야구처럼 늘 접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팬들이 장면 하나만 보고 반칙이 아닌 걸 반칙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인간 오노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예의바르다”는 공통된 평을 했다. 2004년부터 오노를 가르쳐온 장 코치는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선수”라는 극찬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다른 선수들과 기량 차이가 커 사실상 혼자 훈련하다시피 했던 오노를 따로 불러내 밥 먹이고, 집에 오가며 유대를 쌓은 게 장 코치였다. “아폴로는 코치가 하지 말라는 건 ‘왜 안 되냐’ 대꾸 한마디 없이 무조건 따른다. 능력 테크닉 체력 다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노력으로 성장했다.”

여 코치는 철저한 자기관리에 감탄했다. “탄산음료 인스턴트음식은 입에도 안 댄다”고 칭찬했다. 오노의 튀는 언행에 대해서는 문화 차이를 지적했다. 여 코치는 “기업 후원에 목매는 미국 풍토에선 선수가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전 감독은 오노에 대한 인상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사람 중 하나다. 한국팀 소속으로 오노를 만났을 때는 열심히 하는데 좀 이기적이란 인상이었다는 그는 “팀 내 독보적 존재여서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었는데 많이 좋아졌다. 인간적으로 성숙한 선수다. 훈련에 임하는 자세, 지도자를 대하는 존경심은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