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공간 너머] 사회진화론과 3·1운동
입력 2010-03-04 18:16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연서해 독립선언서를 내외에 공포했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이 명문(名文)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 독립선언서가 특히 강조한 것은 우리 민족의 독립이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는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위력의 시대란 ‘침략주의, 강권주의’가 지배하던 구(舊)시대요, 도의의 시대란 ‘인류평등의 대의와 세계평화’가 중심 가치가 되는 신(新)시대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생물 진화의 가설을 처음 밝힌 ‘종의 기원’을 출판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센세이션거리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화론이 일반화된 데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보다도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이론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만든 사회적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다윈의 진화론을 세계의 모든 현상을 해석하는 일반이론으로 확장시켜 사회진화론으로 정립한 이는 허버트 스펜서였다. 그는 인류 사회가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이 관철되는 생존경쟁에 의해 진화 발전한다고 설파했다.
경쟁이야말로 열등한 요소를 탈락시키고 우월한 요소를 더 발전시킴으로써, 인류 문명을 끊임없이 진보하게 하는 동인(動因)이라는 주장은 제국주의적 팽창의 비인도적·반문화적 현상을 합리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논리였다.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고, 세계가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받는 민족으로 갈라지는 것은 경쟁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잘난 사람, 우월한 민족이 승리하고 못난 사람, 열등한 민족이 패배하는 것은 일종의 자연법칙이었다.
전 세계를 사업 무대로 삼아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들은, 어린 자녀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아 억지로 재운 뒤 일자리로 나가는 동포를 보면서 응당 느꼈을 마음의 빚을 더는 데 사회진화론을 이용했다. ‘문명’의 이름으로 식민지 원주민들을 ‘야만적’으로 학대하는 이율배반도 사회진화론이 정당화해 주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승자(勝者)는 ‘우월한 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고, 우월성은 곧 ‘힘’이었다. 실력이니 경쟁력이니 하는 ‘힘’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심지어 본질상 유물론의 기호들로 채워져 있는 사회진화론이 ‘신의 섭리’로 둔갑하기도 했다. 우월한 자가 승리하고 열등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믿음이 확산됐다. 사람들은 ‘신의 가호와 은총’을 빌기보다는 ‘힘’을 주십사 간구하기 시작했다. 비록 성서 어디에도 ‘너희는 서로 힘껏 경쟁하라’는 구절은 없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예선에서 승리한 민족들 사이의 결선이었다. 정치적·군사적으로는 승패가 분명히 갈렸지만, 승리의 영광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쟁의 결산서는 1200만명에 달하는 죄 없는 사상자, 문명 시설과 문화재의 무의미한 파괴, 분노와 적개심으로 분열한 인류뿐이었다. 전쟁은 국가 간 경쟁의 가장 노골적인 형식일 뿐이다.
여기저기에서 경쟁 만능의 세계관을 반성하는 기운이 높아갔다. ‘약한 자에게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는 그 반성의 결과였다.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던 세계를 연대와 협력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계로 바꾸자는 ‘개조’ 사상이 한때나마 사회진화론의 기세를 꺾었다.
그러나 반성은 짧았고 그나마 형식적이었다. 열강은 경쟁적 세계를 진정으로 개조할 생각이 없었다.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하기를 바란 한국인들의 기대도 무참히 꺾였으니, 열강은 한국인들의 독립선언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지 고작 20년 만에, 더 큰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보다도, 비무장의 죄 없는 이들을 잡아 가둔 수용소에서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야수(野獸)보다도, 악마보다도 더 잔악한 인간성의 심연(深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 행위들조차 ‘우승열패’의 논리로 정당화한다면, 인간에게 무슨 희망이 남겠는가? 경쟁이 문명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경쟁은 발전의 동력이기도 했지만, 파멸의 근인(根因)이기도 했다. 강대국의 문명은 전쟁으로 파괴됐고, 식민지 피억압민족의 문명은 약탈과 멸시로 파괴됐다.
우승열패론에 기반한 군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겪은 우리에게 사회진화론은 결코 친화력 있는 논리일 수 없다. 그럼에도 근래 들어 ‘경쟁만능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사람 사이의 경쟁이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고 믿은 시대는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믿은 최근 두 세기에 불과하다. 연대의식의 제어를 받지 않는 경쟁은 언제나 ‘동빙한설(凍氷寒雪)에 숨조차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사람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경쟁의 효율을 살리면서도 그 ‘동물적 야성’을 다독이는 일은 아직도 인류 앞에 버티고 있는 어려운 숙제다.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