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아사다 마오의 눈물

입력 2010-03-03 19:10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자 한·일 네티즌 전쟁이 시작됐다. 여자 피겨 금메달 김연아와 은메달 아사다 마오의 팬들이 벌이는 난투다. 스포츠 세계는 경쟁이 끝나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자를 존중하는 스포츠맨십이 바탕에 있다. 그러나 네티즌은 스포츠맨이 아니다.

일본이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여자 피겨의 역사와 국제대회 실적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데도 김연아라는 천재 한 명에게 밀렸다고 생각하는 분한 감정이 쉽게 삭지 않는다. 4년 전 토리노 올림픽에서 아라카와 시즈카가 금메달을 따 일본 피겨의 콧대가 한참 높아있던 것도 한 몫 했다.

일본에서는 아사다 마오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4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 연령 규정에 87일이 모자라 자격을 얻지 못한 아사다 마오가 만약 출전했더라면 금메달을 땄을 거라고 보았다. 그보다 기량과 성적이 떨어지는 아라카와 시즈카가 토리노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따라서 밴쿠버 올림픽은 아사다 마오가 늦게나마 제 밥상을 찾아 먹으면서 일본이 여자 피겨를 연패(連覇)하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기다림의 4년 동안 한국에서 평지돌출(平地突出) 김연아라는 봉우리가 솟아났다. 주유가 제갈공명을 보고 나서 하늘을 원망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경기가 끝난 후 콩알만한 눈물을 떨군 아사다 마오가 4년 후 소치 올림픽을 기약했다지만 “글쎄”. 그때 24살이면 여자 피겨 선수로서는 끝물. 아라카와 시즈카가 같은 나이에 여자 피겨 최고령 금메달 기록을 세웠으나 이는 ‘서프라이즈’일 뿐. 아사다 마오는 올림픽 출전 직전 대중매체에 “금메달이 절대 목표”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어깨를 짓눌리고 있었다.

그 무거운 짐을 4년 동안 지고 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사다 마오가 점프해서 세 바퀴 반을 도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트리플 악셀은 일본 여자 피겨의 원조 천재이자 세계 피겨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토 미도리가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최초로 성공시킨, 일본의 원조 기술이다. 네 바퀴 도는 쿼드러플을 국제대회에서 성공한 여자 선수는 없다. 밴쿠버에서 5위를 한 안도 미키가 토리노에서 이를 시도했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15위로 밀려났다.

트리플 악셀이 이룰 것을 다 이룬 김연아의 다음 목표로 거론된다지만 20년 전에 완성된, 피겨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소치에서는 16살 동갑으로 밴쿠버에서 4위를 한 일본계 미국 선수 나가스 미라이와 13위 곽민정의 경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