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한장희] 5년만기 MB펀드
입력 2010-03-03 19:05
“제 지지율이 오르니까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고 합니다. 제가 당선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 아니겠습니까.”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TV 토론에서 ‘경제를 잘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렇게 받아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후보 시절과 달리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지지율은 주가와 같이 가지 않았다. 코스피지수는 임기 중 3배 이상 올라 2000을 돌파했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은 탄핵 역풍과 남북 정상회담 때 반등한 것을 빼곤 30% 이하를 맴돌았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주가와 비슷하게 가고 있다. 촛불정국이 한창이던 2008년 여름 지지율은 바닥을 친 뒤 이후 40% 후반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코스피지수 역시 2008년 10월 930선까지 떨어진 뒤 반등, 현재 1600대에 머물고 있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경기 선행 지표격인 주가지수와 묘하게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말 코스피지수가 바닥권일 때 펀드에도 가입, 상당한 평가이익을 거두고 있다.
지난주 이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열기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본보를 포함한 언론사들은 저마다 공들인 2주년 평가를 내놓았다. 필자도 다소 부적절한 비유일 수 있으나 이 대통령의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를 펀드 운용에 비유해봤다.
취임 초기 의욕이 넘쳤던 펀드매니저 이 대통령은 ‘미 쇠고기 수입’이라는 투자 종목을 선택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측근이라는 사람들까지 앞으로 이 대통령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긴 힘들고 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밖에 펀드를 운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보수’라는 안전자산에 꾸준히 투자하고, 중도 실용노선을 표방하면서 까먹었던 수익률을 차차 회복했다.
그러기를 1년. 이 대통령은 다시 고수익 고위험 자산에 손대기 시작했다. 미디어법, 4대강, 세종시 수정안 등이 그것이다. 돈이 생기면 장롱에만 쌓아둔다고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재테크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업가 출신답게 ‘리스크 테이킹’에 다시 나선 것이다. 밀리면 조기에 레임덕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투자 성향도 공격적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애널리스트격인 야당은 비관론을 펴면서 이 대통령의 투자를 연일 무모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도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년 전 ‘이명박 펀드’를 선택했던 국민들 중에는 벌써부터 원금을 걱정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투자자라면 누구든 고수익을 쫓게 마련이다. 하지만 난무하는 정보 속에 재테크 기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과 달리 아파트든 땅이든 부동산만 사두면 ‘장땡’이던 시절처럼 묻어만 두면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래서 갈수록 가치 투자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강조한 것처럼 내재적 가치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장기 투자를 하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4대강 외에도 저출산 대책 등 복지 분야가 현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 투자 종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상대적으로 복지 정책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보가 실시한 2주년 평가에서도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복지·정의 분야 관련 공약이 226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2년 동안 국무회의 처리 안건을 살펴보면 복지와 사회정의 관련 정책 순위가 5위로 떨어졌다.
당장의 지지율 제고 효과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명박 펀드’의 만기인 3년 후 저출산 대책 등 복지에 대한 투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익을 안겨줄 수도 있다.
한장희 정치부 차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