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

입력 2010-03-03 18:34

기업의 저축은 크게 늘어나고 가계는 빚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대체로 기업은 투자를 하느라 은행 대출을 많이 쓰는 법인데 반대로 저축을 하고 있고, 저축을 늘려야 할 가계는 대출을 많이 받아 빚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고 세금을 깎아 주고 있으니 뭔가 박자가 맞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행의 그제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업들의 은행 저축액은 215조797억원으로 2008년 말에 비해 21.3%나 급증했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경제전망 탓에 일단 현금보유량을 늘리며 투자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 저축액 215조원 가운데 85%가 만기 1년 이상 정기예금이다. 때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넣어 둔 돈이라는 의미다.

가계의 경우는 지난해 평균소득이 4131만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에 그쳤다. 이는 물가상승률(2.8%)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다. 그러다 보니 부채가 평균 4337만원으로 1년 전보다 5.1% 늘어났고 적자규모도 57만원에서 206만원으로 커졌다.

기업이 잘되면 국민이 덕을 봐야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는 그런 것 같지가 않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를 하면 고용과 소비가 증가해 기업이 다시 돈을 버는 선순환의 흐름을 타게 된다. 하지만 투자를 하지 않고 은행에 맡겨 이자놀이만 하고 있으면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사회 전반에 활력이 떨어지면서 고용이 줄고 소비가 감소해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과거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지기 전 겪은 현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이 늘면서 전반적으로 소득이 줄고 있다. 대기업은 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정규직 충원을 최소화하고 비정규직 활용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을 가장으로 하는 가난한 가구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은 부유하고 가계는 가난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가계가 돈을 많이 벌게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잘되면서 건강한 경제구조를 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