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13) 국민 위한 ‘사법개혁’ 추진 한점 부끄럼 없어
입력 2010-03-03 17:50
1995년 김영삼 정부시절 ‘세계화추진위원회(이하 세추위)’는 사법개혁을 위해 소위원회를 만들었다. 나는 같은 대학에 근무하다 청와대 비서실로 들어간 박세일 전 정책기획수석의 권유로 이 소위원회의 연구 간사를 맡았다.
세추위는 대법원과 공동으로 법조인 수 확대와 법조인 양성제도 개편을 통해 사법개혁에 나섰다. 이에 따라 법조인 수는 점차 늘려 2000년 이후 1년에 1000∼2000명 범위 안에서 조정키로 했다. 또 법조인양성제도는 획기적으로 개편한다는 기본 방향에 합의했다. 이후 시험이 아닌 교육을 통해 법률가를 양성하는 제도가 추진돼 노무현 정부 때 결실을 맺었다.
사법개혁 소위원회 연구 간사로서 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법개혁 추진과정에서 비난을 받았던 일이다. 당시 사법개혁에 대한 법조계의 저항은 엄청났다. 법률가를 시험이 아닌 교육으로 양성하려 하자 법조계 대표 인사 중에는 “우리는 대학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다”고 강변하는 분들도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사법개혁을 추진하던 인사들을 ‘법조오적(法曹五賊)’이라고 힐난했다.
언론은 법조오적으로 P씨, C씨, K교수 등을 지목했다. 나는 “설마 나까지 포함되진 않았겠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대외적으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소위원회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사를 보고 “P씨와 C씨는 누구인지 알겠는데, K교수는 누구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K교수가 권오승 교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사법개혁은 우리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국민이 값싸게 질 좋은 법률서비스를 이용하게 하자는 게 기본 취지였다. 또 신앙인으로서 단언컨대 어떤 사심도 없었다.
2005년 하나님은 나를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자문위원장으로 세우셨다. 그 즈음 나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직접 참여해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적용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이었다. 이전에 개정안이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소비자보호를 위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가하기도 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를 알고 하나님이 길을 여신 것이다.
경쟁정책 자문위원장을 뽑는 날, 나는 회의에 못 간다고 알렸다. 그 자리를 깊이 생각해 본적도 없었고 10시 자문회의에 참석 후 오찬까지 하면 오후 강의가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오찬을 하지 않으면 강의에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이 회의에서 나는 자문위원장에 선출됐다. 특히 경쟁정책자문위원장을 선거로 뽑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나님은 새로운 비전도 주셨다. 첫 자문위원회를 주재하고 회의실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 자문위원이 내게 조용히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권 교수님, 언제까지 공정위에 자문만 하실 겁니까? 자문은 그만 하시고 자문을 받으셔야죠. 법과 정책 집행을 직접 해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분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이 내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장차 시장경제의 파수꾼인 공정거래위원회를 책임지는 위원장이 되고 싶다는 도전을 이때 받았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