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비씨카드배 16강전 ● 박정환 7단 ○ 퉈지아시 3단

입력 2010-03-03 17:28


어느 햇살 좋은 날에 잘 가지 않는 동네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랜만에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기를 몇 번 반복하자 깊숙이 숨어있던 묵은 감정들마저 털어지는 것처럼 개운하다. 한 번씩 기분전환 겸 변화를 주는 것은 늘 되풀이 되는 일상에 단비처럼 상쾌한 효과를 준다. 유독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던 이번 겨울, 지독하다 싶지만 어쩐지 삼월에 내리는 눈은 뭔가 신비롭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소개할 바둑은 비씨카드배 16강전 박정환 7단과 퉈지아시 3단의 대국 중 나온 타개 수법이다. 박정환 7단은 그동안 받아오던 관심을 얼마 전 이창호 9단을 꺾으며 확실하게 드러내더니 그 뒤로는 엔진을 단 가젤처럼 계속 질주하고 있다. 가속도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더 단단하게 자신의 실력을 다져놔야 내려가는 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퉈지아시 3단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신예 아닌 신예다. 이 둘이 마주하니 외관상으론 마치 다윗과 골리앗 같은 느낌이다.

초반은 흑의 다소 무리한 진행으로 백이 편한 형세다. 이에 반격할 틈을 노리다 백이 수순 하나 빠트린 것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며 포인트를 올려 조금 따라잡은 상황. 하지만 아직 집으로는 조금 부족한 형세다.

이 때 실전도의 백1로 지킨 장면에서 흑의 멋들어진 수순이 보인다. 백은 1로 지킴으로써 좌변은 “나의 집이다”라고 선언한 것인데 이런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흑2로 바로 결행해간다. 흑2∼10까지 백은 어떤 반발의 수순도 없이 실전처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수순을 보면 필연의 수순 같은데 두어지고 나니 그런 것이지 자신이 대국자일 때는 이 수읽기와 그것을 결행하는 판단은 쉬운 일은 아니다.

백은 약점 때문에 11로 이을 수밖에 없고 이 때 참고도의 수순. 백은 흑의 궁도를 줄이며 필사적으로 잡으러 갔지만 흑13까지 패 맛을 남기며 상변의 흑과 연결되었다. 이렇게 백은 아무 대가도 없이 집이 파호되어 오히려 불리한 형세가 되었다. 이 후에도 중앙 접전에서 정확한 수읽기와 물러서지 않는 패기로 흑 승!

아직 젊은 91년생과 93년생의 두 기사. 앞으로도 서로 마주칠 날이 몇 번이고 있을 텐데 그 때마다 지금 같은 열정과 패기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