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영전에 독립운동 훈장을 바칩니다”

입력 2010-03-02 21:17


日帝 고문 후유증 이주삼 선생 , 생전에 독립운동 사실 증언 못해

입증 안돼 애태우다 뒤늦게 수감기록 발견돼 공훈 인정 받아


이대섭(71)씨는 2일 아들과 딸 부부를 경기도 용인시 둔전리 집으로 불렀다. “이게 너희 할아버지의 훈장이다.” 제91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렸던 1일 이씨의 아버지 고(故) 이주삼 선생은 생전의 독립운동 공훈을 인정받고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씨는 가족에게 “집안의 뿌리를 제대로 찾아 마음이 편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의 눈물에는 이유가 있었다. 1935년부터 강원도 강릉과 인제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이씨가 어머니 뱃속에 있던 38년 일본 경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는 해방이 되고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84년 택시미터기 사업을 하던 이씨에게 한 택시기사가 “사장님이 아버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장님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45세였던 이씨는 그해 강릉 연곡면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생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어렴풋이 닮았다고 생각했지. 면사무소에서 확인해보니 족보와도 들어맞았어.”

그렇게 만난 아버지는 자식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신이상자였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소리를 질렀고, 무엇이 두려운 듯 계속 온몸을 떨었다. 밥상을 차려 드려도 외면하고 생쌀과 날것만 드셨다. 마을 노인들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죽도록 두드려 맞고 전기고문을 당해 저렇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이씨는 뒤늦게 만난 아버지가 폐인이 아니라 훌륭한 애국자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독립운동’ ‘일제’라는 말이 들리면 손을 내젓고 펄쩍 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이씨의 아버지는 94년 돌아가셨다.

국가보훈처가 이씨에게 “이주삼 선생의 독립운동을 입증할 수 있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이 선생의 서대문형무소 수감 기록이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이씨는 “일본어로 된 판결문 가운데 ‘치안유지파괴범’이라는 일곱 글자만 읽을 수 있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 선생은 지난달 24일 애국지사로 선정됐다.

이씨는 “아버지 산소가 곧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진다”며 “미친놈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돌아가신 뒤에라도 나라가 인정해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