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범조] 절약의 역설
입력 2010-03-02 19:10
글로벌 경제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정되고 있다. 호주, 이스라엘의 이자율 인상에 이어 최근 미국도 재할인율 인상으로 출구조치를 단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가 반등, 원화가치 상승, 작년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 달성 등으로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선진국들의 불황은 이들 나라의 소비 수요를 감소시켜 우리의 수출에 부정적 효과를 미치게 된다. 경기 침체는 소비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자산 가치 감소와 소득 감소, 고용불안 등 직접적인 고통을 준다.
소비 억제가 능사 아니다
불황 시기에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개별소비자의 소비 감소는 개별적 시각에서는 합리적 결정일 수 있지만 소비 감소→내수 침체→경제성장 둔화→소득 감소→소비 감소로 이어지게 돼 경제 전체적으로 경기 침체가 계속됨으로써 사회 전체적 이익과 상충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가계 기업 등 민간 경제주체가 국가경제의 한 부분이고 이들의 합이 국가경제이지만 개별 경제주체에게 옳은 일이 국가경제에도 반드시 이롭지 않다는 말이다. 이른바 소비 위축과 저축 증가가 사회 전체의 총수요를 감소시켜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결과를 발생하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나 부분이 옳으면 전체도 옳다고 추론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문제가 일어난다.
불황은 아프지만 잘못된 경제 행위나 기대심리를 바로 잡게 해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내재된 거품이 사라지고 과도한 소비나 무리한 투자를 사라지게 한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주택시장, 주식시장, 에너지 및 원자재 시장에서 형성된 투기적 버블(거품)에 의해 야기되었다. 즉 투기로 인한 가격 상승이 시장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키운 동시에 더 많은 투자를 부추겼고 이는 다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다가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며 투기적 버블의 부작용을 강조한다.
기업 가계 등 민간 경제주체들은 그동안 소비나 투자와 관련해 불합리하거나 거품이 있는 소비나 무분별한 기대심리에 따른 투자가 없었는지 점검, 경제위기를 통해 잘못된 소비 행태나 투자를 고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재 회복기에 있는 우리 경제의 활로는 결국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출의 증대와 내수 진작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특히 선진국의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전까지 향후 1∼2년간은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도 무조건적인 소비지출 억제에서 벗어나 필요한 소비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가 걱정거리
소비와 관련해 우려되는 점은 우리나라가 최근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를 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18년이면 전 인구의 14.3%가 65세 이상 노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일본의 경우 소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소비성향이 낮아 소비가 회복되지 않아 만성적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가 0%인데도 소비나 투자가 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 199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것도 소비를 덜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노인 인구 비중이 높았던 것에도 연유했다.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합리적 소비를 넘어 자기의 소비가 국가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깨어 있는 소비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범조 한국소비자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