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한 평에 흙 담고 꽃 심고 밭 가꾸고… 박종성 ‘꽃의 노래, 흙의 노래’展

입력 2010-03-02 18:49


산 허리를 돌아 개울을 건너니 흙길이 나온다. 주변에는 진달래며 개나리며 꽃봉우리를 틔우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봄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하늘에는 뭉게구름 두둥실 떠 있고, 산에서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청와대 뒤쪽 서울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서양화가 박종성(55)씨의 작업실 풍경이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말인가. 작업실에 들어서니 손에 닿을 듯 낮은 천장과 뿌연 형광등이 1970년대의 실내 공간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뒷골로 불리는 이곳의 허름한 농가 주택에 화실을 마련하고 10년째 흙과 더불어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 소재는 흙이고, 그 흙에서 일궈낸 밭이며, 그 밭에서 피어난 꽃과 풀들이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몇 년 전 작가가 전시 주제로 삼은 ‘남은 땅, 한 평의 땅’에 대해 “흙의 순수성과 원초성, 그리고 땅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라고 했다.

작가는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탐하는 대신에 발 아래 낮은 곳의 흙과 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주목한다. 한 평의 땅을 한 평 크기의 캔버스에 주로 그린다.

서울산업대 조형예술학과를 나온 작가는 세상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묵묵히 작업에만 몰두한다. “미술가의 길, 후회는 없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서툴게 살아온 나로서는 안개 속과 같다. 길이 없다는 것은 사방이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도 나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진실과 만나는 노력을 한다.”

작가가 유화 물감으로 토닥토닥 쌓아올린 두터운 질감은 흙의 질박함을 드러내고, 자유분방한 붓놀림은 새싹을 피우는 들꽃의 향연을 보여준다. 흙 냄새 풀풀 풍기는 그의 그림은 우리가 잊고 있는 땅의 본질, 즉 삶의 원형을 화면에 옮겨냄으로써 메마른 현대인의 가슴에 향수와 같은 감정을 불어넣는다.

작업실 근처에서 만나는 자연을 그린 작품들로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타이틀은 ‘한 평의 땅’에서 들려주는 ‘꽃의 노래, 흙의 노래’다. 꽃이 활짝 핀 ‘봄’을 비롯해 ‘백일홍’ ‘산책’ ‘앵두꽃’ ‘산 벗’ ‘양귀비’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풋풋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자연친화적인 그림들이다(02-730-3533).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