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사교육비 경감대책” 큰소리치더니… ‘학원비 산출시스템’ 슬그머니 백지화

입력 2010-03-02 18:57

서울시교육청이 2008년 말 공언했던 적정 수강료 산출 시스템 도입을 해명도 없이 백지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7월 공포한 ‘서울시 학원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규칙(학원운영규칙)’ 개정안에서 신설 예정이던 시스템 시행 근거 조항을 입법예고안과 달리 삭제했다.

시교육청은 2일 “시범 운영 결과 적정 수강료 산출 시스템을 가동하면 학원비가 현 수준보다 상당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 지난해 3월 시스템 도입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억대 정책 빛도 못 보고=시교육청이 1억8000만원 들여 만든 시스템을 단 한 번도 써보지 않고 철회한 사실이 1년 만에 밝혀졌다. 시스템은 2008년 12월 가동될 예정이었다.

시교육청은 시스템을 언제 가동하느냐는 물음에 매번 “잠정 유보한 상태”라며 실책을 숨겨 왔다.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시스템 가동을 기다리던 학부모들만 1년 넘게 애를 태운 셈이다.

수강료 산출 시스템은 시교육청이 2008년 9월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하나다. 각 학원장이 강사 인건비, 교재비, 건물 임대료를 비롯한 학원 운영비 원가를 인터넷으로 입력하면 강좌별 적정 수강료가 자동으로 계산된다. 그 결과는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했다.

시교육청은 적정 수강료를 산출해 공개하면 학원이 비싼 수강료를 알아서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학원별 수강료 현황과 학원 간 수강료 차이를 학부모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범 운영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시교육청이 2008년 10∼11월 서울 지역 11개 학원의 회계 자료를 표본으로 시스템을 돌려 본 결과 평균 수강료는 오히려 올라갔다. 지난해 초 시스템 도입 시기를 미루고 시범 대상을 400여개 학원으로 확대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이 경비를 부풀렸는지 확인하려면 현장조사를 나가야 하는데 1만4000여개 학원을 일일이 실사하기는 무리”라며 “이런 한계는 보완할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2월 예정이던 학원운영규칙 개정안 공포를 연기했다. 개정안에는 시스템 도입 근거가 담겨 있었다. 결국 시교육청은 같은 해 7월 공포한 개정안에서 해당 조항을 몰래 빼버렸다.

◇예견된 실패=시스템 예고 당시 학원 운영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그대로 인정하면 수강료는 전반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시교육청은 이를 ‘학원비 정상화’라며 외면했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다시 손질해 입법 예고한 학원운영규칙 일부 개정안을 이달 중 공포한다. 수강료 상한 기준을 명시하고 학원이 그 기준을 넘겨 수강료를 올릴 때 당위성을 회계 서류로 입증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인회계사를 비롯한 회계 전문가 2명이 수강료 인상 타당성을 검토한다.

이 대책도 허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원 운영 원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앞서 실패한 수강료 산출 시스템과 원리가 같다. 학원별 원가를 인정하면 획일적 수강료 상한선은 사라진다. 수강료를 인상하려는 서울 시내 학원의 자료를 전문가 2명이 모두 검토하는 일도 어렵다. 또 수강료를 올릴 때만 적절성 여부를 가리기 때문에 현 수준 수강료가 적정한지 따져볼 길은 없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는 만큼 일단 시행하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완벽하지 않아도 학원비 인상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김민정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