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건설업체 ‘부도 괴담’… 미분양·입주난 이어 자금난까지 ‘3중고’ 확산

입력 2010-03-02 18:39


중견 건설업체 S건설 과장이었던 최모(38)씨는 지난달 10일 사표를 냈다. 급여 3개월치와 상여금 6개월치를 받지 못한 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건 회사 상황이 급속히 나빠졌기 때문.

S건설은 지난 1월 어음 25억원을 막지 못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직원들은 8개월째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다른 건설사라도 문을 두드려보고 싶지만 더 심각한 곳이 한둘이 아니어서 현재로선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고 토로했다.

중소 건설업체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미분양 물량은 늘고 입주율마저 떨어지면서 자금난에 피가 마르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제2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3중고(미분양·입주난·대출난)’에 따른 부도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지난달 초 전북 지역 건설업체인 광진건설은 어음 2억4000여만원을 못 막아 최종 부도 처리됐다. 3년 전 전주에 공급한 아파트의 미분양 등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자금 압박을 받아오다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문제는 이 회사의 관계사인 광진주택과 배진건설 등도 각각 2억여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연쇄부도 처리된 것. ‘도미노’ 부도설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 근거를 둔 건설사들도 부도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에 본사를 둔 A사 관계자는 “협력업체를 설득해 만기 90일짜리 어음 대신 120일짜리로 끊어주고 있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금융권에서 요주의 대상에 오른 또 다른 중견 건설사는 사채시장에서 간신히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워크아웃 중인 건설사들도 마음이 조급하긴 마찬가지. W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 기업들의 경우 채권단에서 분양이나 다른 사업들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면서 “도급 사업 등을 제외한 PF 사업 등에 대해서는 자금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택사업 등록업체 수는 지난해 말 현재 5281개로 2003년(5879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등록업체가 가장 많았던 2006년(7038개)보다 무려 25%나 감소했다.

협회 관계자는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소 건설사들 여건상 대형사들처럼 사업 다각화로 위험요소를 분산하기가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며 “중소업체들에 대한 선제적이고 선별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의 경영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건 알고 있지만 산업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며 건설업계와 시각차를 드러냈다. 섣부른 대책이 자칫 주택시장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실장은 “정부 입장도 이해하지만 주택 수요 회복 차원에서 양도세 등 세제 분야에 대한 혜택은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박재찬 김현길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