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결산-③·끝 성과만큼이나 많은 과제] 쇼트트랙, 확실한 에이스를 키워야 ‘최강’ 복귀
입력 2010-03-02 19:13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 가운데 세계인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김연아(20·고려대)였다. ‘피겨 사막’ 한국에서 잉태된 김연아의 성공 사례는 스키 등 설상(雪上) 종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새 출발 필요한 설상 종목과 쇼트트랙=한국 쇼트트랙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지위를 뺏겼다. 남녀 총 8개 종목 가운데 중국이 가장 좋은 성적(금4·은0·동0)을 거뒀다. 한국은 2위(금2·은4·동2), 캐나다 3위(금2·은2·동1), 미국이 4위(금0·은2·동4)였다.
여자 3000m계주에서 애매한 판정 때문에, 남자 500m에서 성시백(23·용인시청)이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이제 잊어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진 근본 이유는 한국 쇼트트랙의 국제적 위상 저하와 선수들의 마지막 2% 집중력 부족 때문이다.
한국 쇼트트랙은 남녀 모두 확실한 에이스를 키워야 한다. 선수들간 선의의 경쟁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이번 밴쿠버 대회만큼 한국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에이스가 불분명했던 적은 없었다. 에이스가 없으면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견제를 어떻게 막을건지 레이스 상황별 전술 수립이 어려워진다.
성적만 나쁘면 갈아치우는 쇼트트랙 대표팀 코칭스태프 선임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최고의 성적을 거둔 한국 빙속 대표팀처럼 꾸준히 믿고 맡길 현명한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스키, 스노우보드, 썰매 등 눈 위에서 벌어지는 설상 종목에서는 봅슬레이 남자 4인승이 결선에 올라 최종 19위를 차지한 것이 최대 성과였다. 다른 종목들은 세계와의 격차가 컸다. 한국은 만년설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설상 선수들의 국내 훈련 기간은 스키장이 개장하는 3개월 정도 밖에 안된다. 정 안되면 설상 종목도 김연아처럼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재정 지원을 하고, 해당 연맹은 다음 동계올림픽을 바라보는 프로젝트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 피겨 환경 쇄신해야=김연아는 밴쿠버에서 한국 동계스포츠 위상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돼 19세기 이후 미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피겨 스케이팅에서 아시아 선수들은 주류가 아니었다.
이같은 역경을 극복하고 김연아는 이번 올림픽에서 쇼트프로그램, 프리스케이팅 그리고 총점 모두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연기였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김연아는 캐나다 코치(브라이언 오서), 캐나다 안무가(데이비드 윌슨), 캐나다 훈련 환경(토론토)에서 만들어졌다. 김연아 본인의 개인 재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완성됐다.
수도권 소재 실내 빙상장이 10여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일반 시민 강습 때문에 피겨 선수들은 야밤 올빼미 연습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 피겨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의 김연아는 기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밴쿠버=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