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기자의 마지막 밴쿠버 엽서] 거리마다 “고 캐나다 고” 함성과 경적

입력 2010-03-02 19:13

저는 한국 선수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항공편을 기다리느라 아직 밴쿠버에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선수들 말고 캐나다 얘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이곳 시간으로 어젯밤(1일·한국시간) 밴쿠버 시내는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캐나다가 아이스하키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서울로 치면 종로나 강남역 비슷한 밴쿠버 롭슨가, 그랑빌가는 해방구를 연상시켰습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금메달을 축하하려고 자동차들은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습니다. 캐나다 젊은이들은 국기를 들고 ‘고 캐나다 고(Go Canada Go)’를 외쳤습니다. 지나가는 캐나다 사람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는 건 얌전한 축에 속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가 그랬던 것 못지 않게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광하는 캐나다인들 가운데는 백인, 중남미계, 인도계, 아시아계 등 인종 구별이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가 아니더라도 캐나다인들은 피부 색깔을 불문하고 이번 올림픽 기간 내내 자국 선수들 활약에 열광했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캐나다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백인 캐나다 신문기자, 남미 출신 레스토랑 지배인, 인도계 택시기사, 바(bar)에서 일하는 중국계 이민 2세대 종업원 등등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는 “캐나다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country where I live)이기 때문에 캐나다를 응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을 응원합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국가인 캐나다 사람들은 본인이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캐나다를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출신 레스토랑 지배인(50대 여성)은 “캐나다 정부는 내가 다른 나라 태생이라고 차별하지 않아요. 모든 캐나다 국민은 인종과 상관 없이 똑같은 의료서비스와 65세 이후 노령연금 혜택을 받아요”라고 했습니다. 18년 전 캐나다로 이민왔다는 인도계 택시기사(40대 남성)는 “난 인도 펀잡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 캐나다에 감사(gratitude)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캐나다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낳은 정’(한국)과 ‘기른 정’(캐나다)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나다가 인종 차별이 단 1%도 없는 천국 같은 나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다른 인종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고, 그게 소수 인종들이 캐나다 선수들을 응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밴쿠버 엽서가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곳 밴쿠버에서 많이 느끼고,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를 다닌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밴쿠버 엽서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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