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12) 학생들 요구에 법기독학생회 지도교수 승락

입력 2010-03-02 20:48


하나님은 의외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음을 알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다.

법기독학생회 지도교수가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맡게 된 계기도 비기독인 입장에서 보면 우연이랄 수밖에 없다.

1992년 3월, 일찍 출근한 나는 연구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8시쯤,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반가워 소리를 따라 가봤다.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한 학생에게 살짝 물어보니 법대 기독학생 모임이라고 했다. 며칠 후 모임의 몇몇 학생들이 나를 찾아와 지도교수를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지체 없이 승낙했다.

처음 참석한 예배에서 나는 지도교수를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 중에 있었음을 알게 됐다. 대표기도를 맡은 학생은 “하나님 아버지, 지도교수님을 보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의례히 하는 감사가 아닌 듯해 이유를 물었다.

“자치모임인 법기독학생회가 공식적인 동아리가 되려면 지도교수가 필요했거든요. 지난 몇 년간 지도교수가 없어서 등록도 못하고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도교수를 보내 달라고 계속 기도했거든요.”

법기독학생회 지도교수로서 나는 학생들의 학업 및 진로, 신앙 상담을 했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연구실에 찾아왔다. 순천여고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 법대에 온 재완이란 학생이었다. 이미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두 번 떨어진 이 학생은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법학에는 본래 관심이 없었고 문학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부모와 교사, 교장의 강요로 서울법대에 올 수밖에 없었어요. 학교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서울 법대를 가야 한다고요. 그런데 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회의가 드네요. 왜 이 사법시험을 봐야 하는지….”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1년만 더 해보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다시 사법시험을 치른 후 이 학생이 찾아왔다. 다행히 얼굴은 이전과 달리 밝았다. 그는 지난 1년간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 법률가가 돼야 할 이유를 간절히 구했다며 이제 법률가라는 직업을 통해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재완 학생은 그해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굴지의 로펌에서 수년간 세무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현재는 로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다.

1993년 3월부터는 보다 긴밀한 영적 교제를 위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아침 8시에 모여 독일어 성경을 한 장씩 읽고 해석한 뒤, 받은 은혜를 나눴다. 1997년부터는 영어로 말씀을 나눴다.

어느 날 이 모임에 참석하는 한 여학생이 “아버지가 너무 밉다. 정말 죽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해 지방에서 따로 살았다. 최근 아버지 집에 갔다가 소포 부치는 심부름을 했는데, 괜히 트집을 잡아 야단을 쳤다고 했다.

나는 전후 사정을 다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만치 못한 가정생활로 인해 부녀의 상처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이런 경우 아주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게 마련이다. 나는 따뜻했던 아버지의 기억을 더듬어 보라고 했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며칠 후 이 학생의 중간보고가 있었다.

“도저히 못 쓸 것 같은 편지가 장문의 글이 됐고, 이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나중에 최종 보고를 했다. 그날 이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학생의 부모는 다시 결합했다는 소식이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