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심각

입력 2010-03-01 17:59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와 민간기업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 출신이 금융권 감사 자리에 무더기로 둥지를 틀면서 ‘금융권 감사 협의회=금감원 올드보이(OB) 동문회’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금감원 출신들 금융권 감사 거의 독식=1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부산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신임 감사로 정민주 전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장을 선임했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하나은행의 감사에는 금감원 출신 모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국민, 신한, 씨티, SC제일은행, 대구, 전북은행 등 주요 은행 10곳의 감사직이 금감원 출신이다.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굵직굵직한 회사 감사자리는 금감원 출신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 금감원이 퇴직자의 금융회사 재취업을 막겠다며 지난해 도입한 감사공모제가 무색한 상황이다.

이에 뒤질세라 관료 출신도 낙하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주용식 전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은 저축은행중앙회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영근 국토해양부 기술안정정책관은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지광식 선임 비상임이사도 국토해양부 항공국장 출신이다.

◇후진국형 관치가 낙하산 인사 초래=이 같은 낙하산 인사는 관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힘 있는 인물을 내세워 각종 규제권한을 갖고 있는 당국의 칼날을 피할 수 있고, 퇴직자들은 높은 연봉을 손에 쥘 수 있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관치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재계에서도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전직 장·차관과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SK에너지는 최근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계룡건설과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송광수 전 총장은 두산중공업과 극동유화, 이명재 전 총장은 녹십자와 두산인프라코어, 김도언 전 총장은 금호산업, 정구영 전 총장은 녹십자 홀딩스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당국은 ‘낙하산’이라는 용어 자체에 반감을 드러낸다. 퇴직자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재 영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은 금융회사의 시스템을 잘 파악하고 관련 법률이나 제도가 생겨나는 과정도 알고 있어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예 업무경험의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든 낙하산 인사도 적지 않다. 건설공제조합은 지난 25일 이재진 전 청와대 경호처 경호본부장을 신임 감사로 선임했다. 건설공제조합은 건설사에 보증을 제공하는 일종의 금융회사이지만 청와대 경호처 출신이 최근 3차례 연속 감사직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최근 국회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의 정실인사를 통해 지난해 5월 현재 기관장급 낙하산 인사만 해도 165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