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걸린 ‘스틱 전쟁’ 캐나다가 미국 울렸다
입력 2010-03-01 18:04
미국 사람들은 캐나다를 ‘하키 크레이지 네이션(Hockey Crazy Nation)’이라고 부른다. 미치도록 아이스하키를 사랑하는 캐나다인들을 비꼬아 부르는 말이다. 두 살때부터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평생 한번쯤은 아이스하키 선수생활을 해야 캐나다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을 ‘아이스하키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나라‘라고 비꼰다. NHL이라는 세계 최대 프로아이스하키리그 팀의 대다수가 미국 도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하키 실력은 자기들에 비해 서너 배쯤 아래라는 냉소가 들어있는 말이다.
그런 두 나라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만났다.
두 나라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고액연봉의 ‘화이트칼러’ 대 저임금의 ‘블루칼러’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HL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23살의 시드니 크로스비, 엄청난 몸집에 현란한 스틱웍을 자랑하는 라이언 겟츠라프, 독일 태생의 최고 공격수 대니 히틀리, 조 손튼, 제롬 이긴라 등 캐나다 선수들은 매년 드래프트 1순위로 소속팀에 뽑혔던 억만장자들이다.
반면 미국은 21살의 패트릭 케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속 프로팀에서도 중간정도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다. 대신 미국팀의 무기는 바로 이들 선수가 온몸을 던져 플레이하는 그야말로 ‘하키정신’의 대변자들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23명의 선수가 똘똘 뭉쳐있다면 어떤 팀도 쉽게 이길 수는 없다.
두 팀 단장과 코칭스태프의 대결도 관심가는 대목이었다. 공교롭게도 미국팀 단장과 감독은 현재 캐나다 토론토를 연고지로 삼은 NHL 메이플리프스팀의 단장·감독인 반면, 캐나다팀은 미국 디트로이트를 연고로 삼은 윙스팀의 스타플레이어 출신과 현 감독이 맡고 있다. 미국팀 코칭스태프가 캐나다 프로팀을, 캐나다팀 코칭스태프가 미국 프로팀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우선 하버드 법대 출신의 변호사인 미국팀 단장 브라이언 버크가 눈에 띈다. 현재 토론토 메이플리프스팀 단장을 맡고 있는 버크는 지난 20년동안 ‘재능을 찾아내는 귀재’로 불리워왔다. 버크 단장은 한달 전 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도 미국팀의 단장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는 1980년 레이크시드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 체코 스웨덴을 연파하고 최강 소련마저 꺾었던 미국팀의 기적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팀의 단장은 지난 20년동안 스탠리컵을 다섯 번이나 들어올렸던 디트로이트 윙스 팀의 스타플레이어 출신 스티브 아이저먼이다. 경기중 퍽에 눈을 맞아 한쪽 눈을 거의 실명할 뻔하고도 20년 이상 정상급 선수로 뛰었던 의지의 사나이다.
두 팀의 ‘스틱 전쟁’은 결국 캐나다의 극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캐나다는 연장전에서 터진 크로스비의 결승골에 힘입어 미국을 3대2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캐나다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8년 만에 정상에 복귀하면서 올림픽 통산 8번째 금메달을 차지했다. 최우수선수(MVP)상은 미국의 골리 라이언 밀러에게 돌아갔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