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세종시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4대강

입력 2010-03-01 17:48


“4대강을 위한 세종시인지, 국익을 위한 것인지 향후 전개가 궁금하고 걱정된다”

소리는 동쪽에서 내고 공격 땐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중국 당나라 때 재상 두우(杜佑)가 펴낸 ‘통전(通典)’ 200권 가운데 병법을 기록한 부분에 등장하는 것으로 한(漢) 고조 유방을 도와 중국통일을 이뤘던 한신의 지략이다.



성동격서는 그저 2200여년 전의 옛날 이야기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싸구려 패키지관광에 혹했다가는 거듭되는 쇼핑투어 강요에 결국 지갑을 열게 되고 마는데, 이런 유의 행태는 일상다반사다. 상담(商談)에서도 서로 관심을 보이는 것과 정작 얻고자 하는 것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라고 다를까. 예컨대 세종시 문제는 어떤가. 원안·수정안을 둘러싸고 대리전을 치르는 친이계·친박계는 물론, 야당들까지 주장이 뒤죽박죽이다. 언제 어떤 결말이 나올지 예상조차 안 된다.

그간 세종시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객들이 나름의 주장을 펴왔지만 해법이 못됐다. 그건 논쟁 당사자들이 귀를 막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여기에 또 하나의 주장을 보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한 가지 궁금증만은 따져봐야겠다. 세종시 문제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이명박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잘 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와 세종시는 거의 무관한 이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 정부의 우선정책기조 ‘친서민·민생안정책’에 견주어봐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국가비전 및 우선정책기조 달성을 위한다면 세종시 논란을 확대할 게 아니라 재빨리 수습해 국가역량을 모아야 옳다. 그런데 실상은 아니다. 세종시 원안 수정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중반이었지만 대통령은 전면에 없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수정에 총대를 멨을 뿐이다. 그해 11월 27일에야 이 대통령은 국민 앞에 섰다. 국민과의 대화 방송을 통해 대선 공약 수정에 대한 대국민 유감표명과 더불어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국익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 대통령의 이렇다할 세종시 관련 발언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국익이라면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회에 협조를 구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맞다. 올 1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은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꿎게도 한나라당만 지난주 내내 의원총회를 통해 세종시 문제 해법을 도출한다며 아둥바둥했지만 시간만 허비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게 국익’이라고 하면서도 왜 문제 해결엔 뒷전일까. 만에 하나 설득에 실패했을 때 자신이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를 우려했을까. 그래서 정 총리를 앞세우는 걸까. 만일 정 총리가 실패해도 그건 곧 대통령의 실패가 될 텐데. 의문은 꼬리를 문다.

세종시가 현 정부의 성동격서 전략이었을까. 과연 세종시에 올인하려는 의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수정안이 국익에 도움 된다는 소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수정안대로 변경되면 좋고 아니더라도 국민의 관심을 세종시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혹 그런 생각이었을까.

그렇다면 성동격서의 서쪽은 뭔가. 4대강 사업이라는 게 어렵지 않게 도출된다. 4대강 사업은 이 대통령의 중점 공약인 대운하사업이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제한·수정돼 탄생된 것이다. 지난해 6월 마스터플랜이 나왔지만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추진돼 반발도 적지 않다. 때마침 그 즈음 세간의 관심이 세종시에 집중되기 시작했으니 의구심이 들밖에.

세종시 소란 속에서 4대강 사업은 지금까지 그 어떤 제지도 논란도 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임기 내 4대강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호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거세다. 올 1월 말 리서치 앤 리서치(R&R)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5%는 ‘4대강 사업의 축소 및 중단’을, 24.7%만이 ‘계획대로 추진’을 주장했다. 4대강을 위한 세종시인지, 국익을 위한 세종시인지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고 걱정된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